내가 살아야 하는 원칙

by 간질간질

아침부터 양마을은 북적거렸다. 양들은 모두 자기가 지지하는 내용을 떠들며 옹기종기 바위 앞에 모여 있다. 무리들 위로는 슈잉을 비롯한 새들이 날아다니며 양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엿듣고, 참견하기도 했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양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들에게 들키기도 했고, 새들에게 오히려 자기의 상상을 흘리기도 했고,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새들을 피하기도 했다. 새들도 마찬가지였다. 양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하고, 양들에게 이야기를 흘리기도 했지만 양들을 피하지는 않았다. 새들은 양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양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양들과 항상 같은 편은 아니었다. 양들의 대변자이자 치우치지 않은 사회의 여론을 전달하는 것을 사명이자 자신들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새들은 남을 대변한다고 했지만 항상 자기들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오전이 되기 전날 늦게 새들의 둥지에서는 전체 새들이 모인 회의가 열렸었다. 웨이가 좌장으로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일은 중요한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해. 그러니 각자 맡은 역할을 잘해야 할 거야. 우선 주요 내용을 발제해보도록"


슈잉을 비롯한 중간 간부급 새들이 주요한 내용을 곁들인 정보보고를 하고 슈잉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찌푸리기도 하면서 빠르게 의제를 정리해 나갔다. 어차피 세상에 모든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다. 새들은 양들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겠다는 이야기를 늘 하지만, 양들도 알고 새들도 안다. 새들은 양들이 이야기할 주제를 한정하고 집중시킨다. 새들의 마음속에는 양들을 이끄는 것이 자기들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근시안적인 양들과 멍청한 개들과 이익만 좇는 늑대들이 이렇게라도 살아가게 된 것은 새인 자신들의 역량이라 믿었다. 새들은 앞발이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지만 어디든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 부지런히 날아다니면서 양들에겐 요약된 정보를, 개들에겐 노련함으로 발견한 이면의 시각을, 늑대에게는 적절한 이해관계를 전달하면서 각각의 집단을 활용하고 유도하고 빌붙으며 자기들의 생존을 지켜왔다.


웨이의 고민은 이번엔 어느 편에 서야 생존할 수 있을까이다. 명분과 정의와 진실은 생존을 위한 미사여구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양, 개, 늑대 모두 결국은 집단의 생존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집단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나의 생존 가능성도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이라 늑대라 개라 같은 편이라 생각하면 초짜 취급을 받는다. 양이라 늑대라 개라 같은 편처럼 보여도 자기의 생존을 위해 양과 늑대와 개는 같은 편이 될 수도 적이 될 수도 있다. 미묘한 조율이 가능한 것은 바람을 타고 날 줄 아는 새들의 미묘한 균형 감각 때문이다.


웨이는 막시밀리안의 편에 서 있다. 막시밀리안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모든 사회기반을 바꾸길 원한다. 막시밀리안이 원하는 내용을 퍼뜨리면서 안정적인 먹이를 공급받고 있다. 슈잉은 늑대와 친하다. 늑대들에게 무엇을 얻는 경우는 많지 않다. 먹고 남은 고기를 얻을 수 있지만 그보다 늑대들의 힘을 이용해 양들과의 일방적인 관계에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필요한 때 늑대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들은 표면적으로 어느 새와도 친하지 않았다. 개도 새와 마찬가지로 균형과 공정함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둘은 친해도 친하지 않은 척, 안 친해도 친한 척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들은 새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지 못했고, 새들 역시 개를 전적으로 믿지 않았다. 서로 무시하면 안 되는 존재 정도의 사이만 유지하고 있다.


날이 밝았다. 현재의 구도는 명분을 앞세우는 측과 실리를 앞세우는 측의 맞부딛힘이다. 그런데 이번엔 제대로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반 때문이다. 이반은 독불장군과 같아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었다. 대신, 바스코는 명확했다. 이번에도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만 주장할 것이다. 새들은 진실을 알린다고 주장하지만, 새 무리의 정점에 올라갈수록 진실은 상관없다. 오히려, 파장과 영향력이 더 중요했다. 새들은 항상 지지 않는 쪽에 서도록 노력했고, 질 것 같으면 과감히 그쪽을 버리고 이기는 쪽으로 붙었다. 날개가 달려 어느 쪽이든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날개 가진 자의 특권이다. 하지만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는 법. 완벽하게 승리하더라도 진쪽을 티 나지 않게 관리했다. 긴 세월에서 얻은 경험이다. 순간의 강자와 약자는 있을지 몰라도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없기 때문이다.


웨이는 자기의 선배가 이야기해준 것을 되뇌어본다.

살아 있는 권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낫다. 이유는 이전 권력에 실망했기 때문에 바뀐 것이라 실망하기 전까지는 힘이 강해질 것이다.

탐욕스러운 집단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낫다. 이유는 탐욕에 눈이 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까지 얻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얻은 성과 주위로 많은 부스러기들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득권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낫다. 기득권은 힘을 사용할 줄 알고 힘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멍청한 약자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낫다. 멍청한 약자는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도구의 역할로 적당하고, 버림받는 것도 모르며, 버려도 힘없는 멍청이기 때문이다.


웨이는 선배의 이야기에 자기 생각을 더했다.

힘을 실어 주는 것과 힘을 한쪽에 다 쏟아붓는 것은 다르다. 힘이 한 곳으로 쏠리면 같이 붕괴하지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언제든지 다른 편으로 옮길 수 있다.


항상 추상적인 단어를 앞세워야 한다. 공정, 정의, 법, 원칙.

대신, 내가 살아야 하는 원칙이 최우선이다.


새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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