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아침에 모였던 숫자만큼이나 많아 보이는 양들이 바위로 모였다. 횃불을 들었기 때문에 양들은 더 많아 보였고, 더 음울해 보였고, 더 어두워 보였다. 누군가의 구호로 시작되었는지 양들은 외치기 시작했다.
"죽임 당한 양의 진실. 밝혀내라! 밝혀내라"
바위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수호자의 보좌역 늑대인 라훌이 나타났다. 잠자코 주위를 둘러봤다. 구호를 외치는 양무리의 앞쪽에는 원로원에 속한 니콜라이가 있었고, 뒤쪽에는 어렴풋이 절뚝거리는 형태의 개 모습이 보였다. 정치적인 개 보리스가 이런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터였다.
양들이 왜 모였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마을의 수호자로 늑대들이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양이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문제가 생겼으니 양들은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들은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양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떠 넘기고 자기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항변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양들은 떼로 뭉쳐있을 때 뭔가 큰 일을 할 것 같지만 나뉘면 말 그대로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양들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게 한 곳으로 쏠리길 좋아하고, 뭉쳐 있음으로 안전함을 느끼고, 고통받는 일이 생기면 자기를 제외한 어떤 것도 이유로 삼는다.
개들은 이런 양들의 속성을 알기에 단지 몇 마리로 양 무리를 관리할 줄 안다. 한쪽에서 위협하는 시늉만 해도 양들은 반대쪽으로 급격히 쏠린다. 쏠려서 밀려나는 양들 앞이나 옆에서 마치 저쪽이 탈출구인 것처럼 가볍게 놀래키면 풍선에서 물이 빠져나가듯 양들은 물처럼 쏠린다.
보리스는 뒤쪽에서 라훌을 쳐다보고 있다. 마치 라훌 당신이라며 어떻게 할 것인가 묻고 있는 것 같다. 개들의 방법처럼 양들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한 방향으로 몰고 갈까? 아니면 늑대의 방법처럼 양무리 가운데를 힘으로 찢고 들어가 양들을 도주시키는 방법을 쓸까? 늑대와 개의 차이는 무리를 한 곳으로 모는지 아니면 무리를 흩는지로 나뉜다.
라훌은 보리스를 쳐다보고는 하늘의 달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순간 달을 가르는 검은선 하나가 그어졌다. 라훌은 조용히 양무리를 쳐다본다. 양 시위대는 라훌에게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양들이 감히 늑대에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만 가능하다. 분명,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해 보리스가 충분히 조언했을 것이 분명하다. 누가 소리 지르는지 알 수 없도록 떼로 소리 지를 것, 누가 소리 지르는지 알 수 없도록 밤에 소리 지를 것, 가장 인내력이 많은 늑대에게만 소리 지를 것. 늑대를 자극하지 말 것.
"죽임 당한 양의 진실을 밝혀라! 밝혀라!"
다시 한번 들어보면 누가 진실을 밝혀야 하는지 주어가 빠져 있다. 늑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자극하지 않으려는 안전장치다.
갑자기 바위 뒤편에서 또 다른 횃불이 나타났다.
앞에는 올리버가 또 다른 양무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뒤에는 막시밀리안이 천천히 따라오는 중이다.
"개들은 진실을 밝혀라!"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의 서술어는 정확히 일치했다. 진실을 밝히라고.
하지만, 주어가 갈렸다. 개와 알 수 없는 누군가로.
보리스와 라훌은 눈이 마주쳤다. 보리스는 헐떡이는 혀를 빼문 체 집으로 절뚝거리며 돌아섰다. 라훌은 달을 가른 검은선이 사라진 곳에서 달빛에 반짝이는 작은 구슬을 봤다. 막시밀리안은 라훌의 시선의 끝에 슈잉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라훌에게 표정으로 물었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 건가?'
라훌은 일부러 양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위대끼리 싸움이 붙었다.
"수호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닌가?"
"늑대의 이빨 자국과 발톱 자국도 없는데 늑대라는 증거가 어디 있나?"
"쫓겨난 개들은 그 시간에 뭘 하고 있었는지 수사해야 한다!"
"충성스러운 개들을 끌어들여서 왜 물타기를 하나!"
양들의 마을은 양들의 다툼으로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었다. 이 소란은 이반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