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

by 간질간질

수제비는 공부를 못하지 않았지만 자랑할 만큼은 아니다. 최근에 뜬 기사들을 보면서 돌멩이에게 물었다. 사실, 물어본 것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생명체에게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왜냐하면, 돌멩이는 물어볼 것 필요도 확인할 필요도 압수수색으로 검증할 필요도 없이 공부와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돌멩아. 넌 학교 다닐 때 전교 1등 해봤니?"

"전교? 전교를 왜 따져. 반으로 따지기도 어려운데"

놀라울 리 없는 답변이다.

"그래서, 넌 공부를 얼마나 잘했니?"

"공부를 잘해? 왜 공부 다음에는 '잘했냐' '못했냐'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는 건지 모르겠어. 공부를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 물어보는 것도 별로지만 잘했냐 못했냐 묻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 생각해"

돌멩이가 어쭙잖은 반항과 앙탈을 한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숨 고르고 질문을 이어갔다

"미안해 돌멩아. 넌 공부를 좋아했니?"

"공부는 좋아했는데 시험은 못 봤지"

오른쪽 팔뚝에 힘이 들어갔지만 잘 참아냈다.


"넌 몇 등이나 했니?"

"그걸 어떻게 기억해?"


돌멩이는 분명 석차 표시를 환산하면 1에 가까운 수에 수렴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론이 들었다. 돌멩이에게 등수는 숫자에 불과했다. 물건을 사고 나서 발행되는 영수증에 찍혀 있는 온갖 숫자들 중 가격을 제외하곤 성적표에 표기된 등수의 의미가 같았을 것이다.


"수제비 넌?"

"난 전교 1등은 중학교 때 해봤지만 고등학교 때는 잘 못했어. 사춘기였거든"

"우와~! 수제비는 똑똑하구나!"


수제비는 방긋 웃는 것으로 답했지만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전교 1등과 똑똑한 것은 분명 다르다. 어른들이 무지한 아이들에게 하는 거짓말 중에 하나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똑똑한 것은 다르다는 것은 서울대에 가보면 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가장 잘한다는 서울대생들 중에 바보를 골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인간성이 좋은 것도 아니다. 가장 쉬운 예로 대학교수들을 떠 올리면 된다. 얼마든지 우리는 차라리 개와 같이 지내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는 현실도 엄연히 알고 있다. 개보다 못한, 개보다 더한, 개와 같은 교수들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얼마 전에 끝난 의사들의 파업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 단어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입밖에 내지 않던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전교 1등의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를 비교하는 것은 의사들이 헛 똑똑이 었다는 것을 증빙하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남을 죽어라 비방하다 잡힌 학생이 전교 1등이었기 때문에 봐줘야 한다는 논리 역시 웃기는 일이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전교 1등이라 봐줘야 한다는 것은 달리기 1등이기 때문에 봐줘야 한다는 것과 구별할 수 없고, 전교 얼짱이기 때문에 넘어가야 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전교 1등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범죄자인데 시험을 잘 본 범죄자란 뜻이다.

전교 1등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성적으로 줄 세우기를 한 획일적인 사회인지 나타내는 예일뿐이다.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변별력이 성적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얼마나 빈약한지 드러내는 불편한 진실이다.

이와 유사한 것이 돈으로 순위를 매기는 일이다. 전교 1등보다는 그래도 약간의 발전이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돈이 많으니 봐줘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 사람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를 하고 많은 사람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지를 내세우면서 봐줘야 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정리해서 단어들을 덜어내면 남는 것은 '돈이 많으니 봐줘야 한다'는 것만 남는다.


전교 1등과 돈이 많다는 것은 그래서 서로를 지지한다. 전교 1등을 하면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의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백화점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나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람들이 내뱉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라는 것도 같은 말이다. 결국, 시험을 잘 봐서 통과했기 때문에 다르다고 선을 긋는 것이다.


인정은 해야 한다. 시험을 잘 본 것은 사실이니까. 시험을 잘 본 것과 다른 것은 연관되지 않는다. 이제는 그걸 더 명확히 해야 한다.


"아니야. 내가 뭘. 돌멩이 네가 더 똑똑한 거 같아"

수제비는 실천하기로 했다. 돌멩이를 성적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기로 했다.

"알아"

뿌듯한 돌멩이. 그리고 돌멩이보다 멍청한 것을 인정하게 된 수제비.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이 떠올린 수제비. 돌멩이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똑똑하지도 않다. 하지만 사실을 바로 잡기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