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가 어딘가 가슴팍에 바람이 든 표정으로 퇴근을 했다. 평소에도 살가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터라 묻지도 않고 이야기하지도 않았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돌멩이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란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게 짬이고 그게 세월이고 그게 관심이다.
연예를 하는 보통의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있다.
"나 어디 달라진데 없어?"라는 질문
꽁무니의 램프 모양만 보고도 차종을 알아내고, 엔진이 뛰는 소리만 들어도 오토바이 기종을 분류해 내는 능력을 가진 남자들이라도 여자들의 달라진 점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맞고 끝내고 싶을 지경이다. 보통의 여자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내고, 적절히 응대한다. DNA가 만든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법이다.
돌멩이의 표정이 딱 그거다. '나 어디 달라진데 없어'. 알지만 아는 척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못 견디는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말하고 싶어서 심장이 터지고 입술 사이로 새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할 만큼 가슴 한가득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먼저 말하기 마련이다. 급하지 않은 사람은 기다리면 된다. 적절한 맞장구만 쳐주면 알아서 모두 쏟아낸다. 상대방의 표정이 심드렁하거나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면 원래 이야기뿐만 아니라 더해서 온갖 양념을 쳐서 이야기를 포장한다. 그럼 결과는 뻔하다. 양념이 과할수록 믿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결론이 되거나 진실보다는 허구가 더 많이 들어간 판타지 소설이 된다.
돌멩이의 뿌듯함은 회사에서 지급받은 노트북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에 좋아하는 전형적인 월급쟁이. 항상 회사 욕을 하다가도 술 마시고 나서 어떻게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줄 것인지 고민하는 월급쟁이. 연봉을 짜게 준다며 욕하고 금방이라도 그만둘 것처럼 으르렁 거리다가 의자를 바꿔주거나 선물 하나를 주거나 지금처럼 새 노트북을 주면 헤벌죽.
노트북을 좋아하는 이유도 듣고 나면 비루하다. 발가락이 닮았다고 항변하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전체 얼굴이 못나서 애인이 없는 사람에게 '너는 참 눈이 예뻐'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이 그래도 위로가 되는지. 돌멩이의 노트북은 최고가, 최고 사양이 아니다. 남들이 간지 난다고 말하는 애플의 맥북도 아니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쓴다는 가장 가벼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비용을 아끼고 남들이 쓰던 노트북을 넘기던 회사에서 그래도 '새 것'을 줬다는 것에 행복해한다.
돌멩이가 다음날엔 어딘가 화를 가득 안고 돌아왔다. 노트북 효용이 벌써 사라졌나 보다. 알지만 아는 척하고 싶은 생각은 역시나 없다. 어차피 못 견디는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말하고 싶어서 심장이 터지고 입술 사이로 새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할 만큼 가슴 한가득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먼저 말하기 마련이다. 급하지 않은 사람은 기다리면 된다.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돌멩이가 자기 방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돌멩이의 목소리에는 황당함과 연민이 묻어 있었다.
이번에 회사를 나가게 된 선배 때문이란다. 노트북을 사달라고 했나 보다. 선배가 돌멩이를 챙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선배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트북을 사주는 것은 다른다. 비싼 몰스킨 노트라면 모를까 중국산 노트북도 저렴하다 해도 수십만 원이다. 돌멩이의 당혹스러운 지점이다. 충분히 보상받고 충분한 수익을 챙기는 사람이 겨우 연명하는 사람에게 고가의 장비를 사달라는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
그래서 인생은 심심하다가도 끈을 놓기 아쉽다. 느슨한 끈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철사처럼 날카롭게 변해 사람을 찌르고, 도움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목을 조른다. 그렇게 인연의 끈은 얽히고설킨다. 인생의 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