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와 수제비가 같이 알고 있는 선배 중에 '싸다구'가 있다. 싸다구 선배는 싸구려 좋아하고, 다 좋다고 하고, 구려서 붙여진 별명이다. 칭찬할 꺼리가 없는 '사람은 착해'의 전형이다. 나이도 어느덧 50을 넘겼지만 여전하다.
싸다구 선배는 수제비와도 이야기가 되고 돌멩이와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었다. 모든 주제에 '좋아~!'라고 반응하는 사람이니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들은 찾아갈 수밖에 없다.
돌멩이와 수제비는 지지하는 대선후보가 다르다. 돌멩이는 자신이 못났다고 말하면서도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주제로 승리에 익숙한 집단을 지지한다. 자신이 잘나지 못한 것의 대리만족을 엘리트로 포장된 집단에 투영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고 수제비는 돌멩이를 분석한다.
수제비는 정치엔 관심 없다 말하면서도 '세상 혼자 사는 거 아니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집단을 지지한다. 행동에 나서지 않는 자신의 의견을 누군가 대신해준다고 말하는 집단에 의존하는 것 같다고 돌멩이는 수제비를 분석한다.
돌멩이와 수제비가 종전선언을 놓고 이야기하다 우연히 찾아온 싸다구 선배가 끼게 됐다. 수제비와 돌멩이는 각자 종전선언을 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를 놓고 주장을 폈다. 주장을 폈다고 말하긴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돌멩이와 수제비는 각각 싸다구 선배에게 이야기를 했을 뿐이니까.
싸다구 선배는 연신 '그렇지', '그럴 수도 있구나', '맞네...' 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사를 섞는다. 황희 정승이 태어났으면 이랬을까. 돌멩이와 수제비 모두 답을 얻을 생각이 없다. 그저 내 편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하나 나타났으니 동의를 받고 싶은 거다.
수제비와 돌멩이가 동시에 묻는다
"선배, 그래서 뭐가 맞는 거 같아요?"
싸다구 선배는 돌멩이의 눈만큼이나 작은 눈에 힘을 주더니 수제비의 콧잔등만큼이나 예리함이 없는 코를 긁적인다.
"글쎄.. 그러니까...."
돌멩이와 수제비는 싸다구 선배에게 분명한 답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임을 알지만 어서 말하라고 무언의 윽박지름을 하고 있다. 싸다구 선배는 이미 먹고 난 귤껍질을 손톱으로 잘게 찢는다. 귤껍질이 잘게 갈려나가 즙이 나올 거 같다. 귤즙으로 손톱이 노랗게 물들어 간다.
"하나만 산수를 해보자"
싸다구가 입을 뗐다.
"휴전이 1953년이라고 하고, 그때 전쟁터에 휘말렸던 사람의 나이를 열 살로 가정해볼게. 피난민들도 있겠지만 전쟁터에 나가거나 부역에 끌려가거나 주도적으로 피난하려고 하는 것처럼 경험을 온전히 기억하려면 십 대는 돼야 할거 같으니까. 그냥 열 살로 해볼게"
수제비와 돌멩이는 뭔 얘기 하나 싶어서 그냥 듣고만 있다. 돌멩이는 자기가 열 살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을 더듬는 중이고, 수제비는 세는 나이일지 만 나이일지 따지는 중이다.
"그럼 그 사람들이 지금 몇 살일까? 1953년도에 열 살이었다면, 2003년도가 되면 63세가 되고, 2021년이면 81세가 되겠네. 그럼 전쟁 관련해서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80은 넘어야 될 거 같은데. 종전선언을 주도하는 대통령도 80은 아니고, 종전선언을 반대한다는 후보도 80이 안되고... 아무튼 직접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는 아니겠네"
돌멩이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수제비는 "나이와 판단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싸다구는 대답은 하지 않고 느릿하게 말을 계속한다.
"종전이라고 했으니 종전이 아니면 다시 전쟁하자는 거고. 전쟁이 벌어지면 누가 전쟁을 직접 겪을지 생각해 보려고 한 거야. 전쟁이 났어. 제일 먼저 전쟁터에 나갈 군인으로 보면 20대가 되겠지. 직업군인은 빼고 말이야. 민방위 까라고 해도 40대. 결국 20~40대가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될 거 같다. 애들은 굶주릴 거고 힘없는 노인들은 누구의 배려도 받지 못하겠지. 그럼 그나마 유리한 건 그중에서도 전쟁통에 먹고살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면서 군대에 끌려가지 않아도 될 사람들일 것 같다."
수제비는 '전쟁 나면 며칠이나 버틸 물건을 살 수 있을까?'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우리 집도 아니고 전세니 부서져도 난 큰 상관이 없겠지만, 이 집 하나로 버티는 사람 좋은 주인집 할머니는 어쩌나...'라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돌멩이는 '전쟁 나면 난 민방위라 직접 나가지는 않겠지만 장기전이 되면...'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사실 1차 세계대전도 아닌데 전방과 후방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싸다구는 '전쟁 나면 피난 갈 필요도 없고, 인터넷도 안될 거고, TV도 안될 거고, 라디오를 챙겨야 하나...'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이 얘기를 언제 끝내고 집에 가지?'라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지금도 종전선언에 제일 열심히 논쟁 중인 사람들은 당사자에서 비껴 난 사람과 당사국에서 비껴 난 나라다. 세상일은 참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