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負擔

독자에게 짐을 떠 넘기는 방법 - 독음 달지 않기

by Toriteller 토리텔러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아마 사춘기 아닐까 싶다. 자아에 대한 호기심과 주위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대상이 없었다. 클릭 한 번으로 토할만큼의 콘텐츠 양을 쏟아내는 유튜브는 존재하기 전이다. TV는 지겹고, 신문은 지루했다. 그러다 찾아낸 아버지의 책장안의 책. 世界名作小說全集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여섯 권짜리인가를 찾아냈다.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된 것도 한자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문의 제목이나 책의 제목은 의레 한자였다. 한 소설의 제목. 무슨 글자인지 몰라서 옥편을 뒤졌던 한자. 지금도 쓸 줄은 모른다. <倦怠>. 내용도 생각나지 않지만 제목에 한자를 넣어서 글 쓰는 날 보니 그 소설 제목이 떠올랐다. 꼰대의 추억.


카카오 브런치의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선정 전까지는 2020년에 열심히 글을 써보겠다며 밑 자료가 될만한 기사들도 스크랩하고, 혼자만의 계획도 세워봤다. 선정되었다는 말에 일단 흡족했다. 흡족은 같은 크기의 돌덩어리가 되어 가슴을 누르고 머리를 단단하게 하고, 손가락을 굳게 했다. 두 달여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있다. 카카오 브런치에서는 먹튀라고 하련가?


나름 변명은 있다. 브런치 북 당선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유명한 매거진에서 연락이 와 칼럼도 쓴다. 매거진을 홍보하려 링크를 찾아봤으나 오프라인 잡지에만 실렸나 보다. 못 찾았다. 소소한 용돈벌이를 한다는 마음에 흔쾌히 시작했지만 종이에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뿌려 진다는 사실이 또 돌덩이가 된다. 브런치에 글 쓰듯 편하게 꺼내놓지 못하고 소처럼 원고를 되새김질한다. 마감이 끝나면 늘낙지처럼 퍼진다.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부족한 글-난 진심이다-을 책으로 내주시겠다는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다. 세월은 인상을 만든다. 대표님은 책을 좋아한다는 아우라가 가득했다. 얼굴에 몸짓에 말에 '책에 담긴 애정'이 스며있다. 연애를 하면 주위에서 알아차리듯 대표님은 책과 연애하는 사람이다. 이제 두 번째 책. 얼마 전 책을 냈던 출판사 마케터에게 "잘 되면 갑질 해보는 게 소원 중 하나예요"라고 했던 말은 허세가 됐다. 책 만드는 사람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진 대표님의 면전에서 갑질은커녕 어떻게 하면 이 분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만 했다. 또 돌덩이가 생겼다.


소속이 바뀌었다. 주위에선 '영전'이라며 축하를 해준다. 내가 노력해서 바뀐 것도 아니고,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도 아닌데 심드렁했다. 누구네 집에서는 밥상위의 수저를 뒤집어 놓으면 안 된다하고, 어느 나라는 젓가락을 가로로 놓아야 하듯 옷을 갈아입으니 불편하다. 익숙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선수인 회사는 '숫자'로만 설명하고 설명된다. 회사 업무는 결국 좋은 숫자를 얻기 위한 설득과 노력과 부당함과 납득과 허세로 이루어진 밀고 당기기다. 말로 행동으로 문서로 열심히도 한다. 나도 한다. 숫자가 지배할수록 결과는 명확하고 사연은 사라진다.


유튜브와 온라인만 뒤지다 잠들고 일어나면 남는 것이 없다. 사실, 죽으면 남는 게 뭘까 싶긴 하다. 뭐라도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지 누군가에게 있어 보이려고 하는 건지 책을 사고 추천받고 선물 받았다. 읽은 책은 뿌듯함을 주는 허세의 증명서지만, 읽어야 하는 책은 해야 할 업무이자 태스크이자 숙제이자 또 하나의 돌덩이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조금씩 책을 깎아 나간다. 그러다 평소에도 중독될까 두려워하던 넷플릭스 정기구독이 훅 삶에 들어왔다. 깎던 방망이가 썩어나가도록 넷플릭스에서 허우적거린다. 쌓인 종이책은 돌산이 돼서 또 누른다.


늘 친한 기자들을 만나면 하던 얘기를 나에게 한다. '자꾸 재지 말고 그냥 써! 틀리면 고치면 되잖아!' 안 되는 오십구만 가지의 이유를 대는 시간에 한 발자국 나가 보는 게 낫다. 범죄만 아니면 남에게 해코지 하는 것이 아니면 한 발자국 나가야 달라진다. 오늘 한 발자국 디뎌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물리적인 부담이다. 노쇠한 폐와 성능이 떨어지는 산소 흡입 양에 마스크라니. 입에서 나오는 몸의 묵은내는 딸려오는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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