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톤, 미래의창
최근에 기회가 생겨 두 권의 책을 얻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즐기지 않는 체질이다 보니 내가 책을 많이 볼 거라는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나 보다. 책을 젊을 땐 좀 읽었지만 요즘은 노안 때문에 활자를 읽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힘들게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쓴다는 장식적인 도입부는 짧게.
두 권 다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빅데이터는 말 그대로 'Big Data'. 사람들이 제각각 경험한 것을 근거로 말하는 것은 small data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수량이 작을 뿐이다. 반면에 Big data는 우리가 온갖 행동에서 흘리고 다니는 data를 모아서 간접경험의 폭을 대폭적으로 늘린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우리는 '흘리고 다니는 것'들이 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나만 아니라 남들도 같이 '흘리고 다니는 것'을 보니 비슷한 것들을 묶을 수 있게 된다.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우린 감시 세볼 생각도 하지 못한 data를 알게 됐다.
'빅데이터, 사람을 읽다'의 가장 중요한 data는 '카드 결제 내역'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사용처'만큼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내가 아무리 '지적인 것을 사랑하는 사람'인척 해도 나의 카드 결제 내역에 '지적인 것'보다 '먹을 것'에 돈을 썼다면 지적인 것을 사랑하는 척하는 먹보일 뿐이다. BC카드에서 자신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뽑아냈기에 누군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얼추 알 수 있게 된다.
2020 트렌드 노트에서는 주로 '검색어'를 활용했다. SNS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해시태그 역시 빅데이터의 재료가 된다. 카드 결제만큼 직접적- 항상 내가 돈을 내는 것은 아니니까-이지 않아도 내가 주로 찾는 것과 내가 실제로 가 봤던 것에 대한 관심을 근거로 한다. 이미지도 많아 욕망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둘 다 요즘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지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사실, 그걸 알아서 뭘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 눈치' 안 봐도 된다고 얘기는 하더라도 실제 눈치 안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를 만큼 남 사는 것에 관심이 많다.
두 권의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우리나라 카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더한)의 결제 비율이 96%라는 것, 스마트폰의 사용비율 역시 노인들을 포함하더라도 비슷하다는 것.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흔적을 디지털로 고스란히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책도 나올 수 있지. 싫다고 해서 현금만 사용하고 스마트폰을 없앤다 한들 대세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빅데이터, 사람을 읽다'는 잘 정리된 '보고서'를 보는 느낌이다. Data에 근거해 얌전하게 정리하고 설명했다. 회사 보고서를 좀 더 읽기 편한 형태로 정리한 리포트 같다. data라는 본래 재료의 맛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그래서 flat 하고 자극은 덜하다. 담백한 사람에게는 좋을 것이고, 신선함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심심할 터다.
2020 트렌드 노트 역시 데이터를 기본으로 했지만, 마음껏 변형을 가한다. 재료를 놓고 요리 방법을 달리해서 내놓는 음식 같다. 최신 트렌드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마음껏 펼쳐 놓은 것 같다. 신선하고 신기하지만, '정말 이렇다고?'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카드 결제 data를 기본으로 하다 보니, 어디서 밥을 먹고, 몇 살이고, 소득이 어떻게 되고, 성별이 뭐고 같은 재료들을 기본으로 내용을 추론하게 된다. 내가 먹는 (읽는) 내용의 재료는 이것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주니 어떻게 이런 음식(결론)이 나오게 되었는지 추론하게 된다.
이용자들이 sns에 남긴 문장들을 가지고 와서 전달해준다. 우리가 쓰는 검색어를 가지고 조합을 한다. 몰랐던 사실들과 단어들을 소화시키는 맛이 있다. 소설책은 아니지만 소설책 읽는 기분이 든다. 읽으면서 막히는 것도 없이 '맞아! 그렇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른데 어떤 음식이 좋은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그냥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된다. 불량식품이 아니라고 하면 입맛에 맞는 것이 더 낫다는 믿음이다. 적어도 이 두 권의 책은 불량식품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것이지만!
빅데이터 사람을 읽다는 표지부터 고르기 부담스럽다. 잘 쓰인 개발자를 위한 책처럼 보인다. 그리고, 벗어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인지 자극이 없다. 그리고 발랄한 묘사가 없다. 저자들의 책임 일리 없다. 그냥 내 글 읽기 취향에서 볼 때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분명, 보고서를 탈피한 책을 쓰려고 한 노력은 알겠는데 고등학생이 갑자기 '나도 교복 말고 입을 옷 있어!' 라며, 사복을 입었지만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유치하거나 설 익었다는 뜻이 아니라. 본질이 잘 쓰은 회사 보고서 같다는 의미다.
2020 트렌드 노트는 표지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내용도 잘 읽힌다. 그리고 모르겠다. 각 장 다음에는 Biz Point를 넣어놓긴 했는데, 자유로운 예술가가 갑자기 '넥타이'하나를 매고 나서 '격식을 갖췄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워낙 Biz 마인드가 없어서 포인트라기 보다는 그냥 '요약'처럼 보인다.
이리 말해도 책을 쓰신 분들의 노력과 실력은 나보다 낫다. 이 점은 분명히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출판사 분들이 낸 고생도 알겠다. 입에 발린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