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전자가 5만전자가 되었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농담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었어"부터 "지하실도 여러 층이 있어"까지. "삼성전자 78층에 사람 있어요!"라는 댓글에 "84층에도 있어요"는 서로 칼을 꽂으며 즐기는 자학개그다. 흐르는 눈물을 훔쳐가며 한참 웃다 보면 속이 뻥 뚫린 기분이 든다. 통장도 뻥, 가슴팍도 뻥, 온통 비어 있으니 시원스레 바람이 잘 통한다.
잠시 정신을 차려보면 한 때 우리는 "그때 삼성전자 주식을 사놨더라면..."이란 구절을 경전 외우듯이 속삭였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뒤로는 모두 삼성전자 주식을 사고 있었다.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도 비대면으로 계좌를 트고, 삼성전자의 주주가 되어 곧 은퇴하거나 은퇴할 때 풍족하게 살 거라 굳은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신앙심이 흔들리는 중이다.
오래 살면 좋은 점이 있다.
하나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웬만한 일들은 덜 놀라게 된다는 점이다. 외환위기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직접 겪은 나에겐 IMF사태로 말하는 게 더 익숙하다. 마치 한국전쟁이라 부르지만 직접 겪은 사람들은 625 전쟁 또는 625 동란이라고 부르는 게 더 입에 배어 있듯 말이다. IMF를 겪으면서 얻은 경험은 '회사는 믿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거였는데, 그때 '모두가 망했다고 생각할 때 투자했다면...'은 배우지 못했다. 당시 어렸고, 오직 살아남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또 하나 우리나라는 정말 망했고 곧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떠나간 여자 친구가 갑자기 돌아와 내 품에 안기는 것보다 비현실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털고 경기가 나아졌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일명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IMF 때 기억은 유효했다. 여전히 '생존'에만 관심이 있었고 어떻게 '손해를 덜 볼 것인가'에만 집중했지, '어떻게 기회를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선순위가 밀렸다. 그 사태도 지나쳤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경기는 바닥을 향하다 양적완화라는 돈 풀기 때문에 좋아졌고, 특히 주식시장은 타 올랐다. 그때도 나이 든 선배는 "이렇게 풀린 유동성 때문에 인플레가 엄청날 텐데..."라고 걱정했지만, 곧 "집을 샀는데 얼마가 올랐더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022년 얼마나 긴 터널이 될지 모르는 터널 입구에 서 있는 기분이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위기라고 말을 한다. 하반기에는 좋아질지 모른다는 뉴스가 간혹 나오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루미 하다. 세월의 경험은 '이번에도 쉽지 않겠는데...'라고 말을 한다.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손 붙잡고 위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의 경험으로 '쉽지 않겠지만 나아지는 때가 오겠지'라는 것 역시 주름과 같이 새겨져 있다.
지금 바닥인가요?
지표보다 사람들이 감정으로 표현한다면 "이제 바닥인가요?"라고 물을 힘도 없을 때가 와야 한다. 처음 등산을 할 때처럼 '정상이 언젠가요?'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산에서는 '얼마나 남았나요?'라는 질문에 하나같이 '조금만 가면 돼요'라고 말한다. 비슷하다. "언제가 바닥인가요?'라고 하면 "조금만 더 지나면 돼요"라고 말한다. 산을 오를 때 기억을 떠 올려보면 아직 정상은 멀었다. 바닥이 금방 지날 거라면 "얼마나 남았나요?"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물어볼 기력도 없이, 더 이상 못 가겠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지나면 언젠가 정상은 나온다. 삶도 비슷하다. 당시엔 죽을 거 같은데 지나면 또 지나간다.
산과 다른 점이라면 산 정상은 어디인지 분명히 알지만, 경기는 어디가 바닥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경기는 지표도 중요하지만, 감정에 더 많이 흔들린다.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 나이 먹은 사람의 특권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것 - 역병을 주관하는 악마가 신에게 허락을 구한다. "저는 역병으로 이 성읍에서 3명만 죽이겠습니다" 신은 허락 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3명이 아니라 엄청난 사람의 숫자였다. 화가 난 신이 역신에게 왜 약속을 어겼냐고 물었다. 역신은 "저는 3명만 역병으로 죽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죽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바닥을 지났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바닥은 계속된다.
지금은 나대지 않고 주의 깊게 쳐다볼 때
바닥이 올 수록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소리만 들린다. IMF 때의 나처럼 '이를 어째'라며 두려움과 공포에 휘둘리게 된다. 모든 것이 캄캄하고 사방이 막혀 있다는 느낌만 든다. 동굴에 갇힌 기분으로 항상 발밑만 쳐다본다. 저쪽에서부터 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모두가 발밑만 쳐다보면서 어깨를 부딪힐 뿐이다. 빛이 들어올 때 먼저 동굴을 탈출한 사람부터 신선한 공기와 희열을 누리겠지만 소수다. 어느 순간 '뭔가 보이는데?'라며 발밑에서 무릎을 보고 어깨를 보고 주위 사람이 보이기 시작할 땐 이미 상당수의 사람이 동굴을 벗어났을 때다. 지금은 두렵고 안 보이겠지만 가끔은 머리를 들고 살펴야 한다. 빛이 들어오는지.
공포에 휩쓸리다 보면 동굴을 벗어나선 "아! 그때 삼성전자 샀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또 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자꾸 삼성전자라 말을 하니 마치 내가 '삼성전자 지금 사둬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그냥 예를 들었을 뿐이다. 언젠가 바닥을 지나 경기가 올라갈 것이 확실한 것처럼 삼성전자도 대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100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 모를 뿐이다. 아무튼 이 바닥을 지나면 우리는 또 옹기종기 모여서 "삼돌이는 그때 그걸 사뒀데! 그래서 몇 배가 올랐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샀어야 했는데.. 그때 삼순이가 사라고 했는데 내가 안 샀지 뭐야!"라고 덧붙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이 들어 좋은 점두 번째
둔감해지는 대신 사소한 것에 즐거워한다. 포르셰를 몰지 못해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열리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투플러스 등심은 못 먹어도 잘 익은 김치를 얻어 왔을 때 행복해한다. 오래 살았기에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면서 좋아하고 - 젊은 사람들이 참 싫어하지만 - 수십 번은 봤을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낄낄거린다.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는 만큼 사소한 것에 잘 삐지는 단점도 있지만, 노인네들은 모른다. 민감한 젊은이들이 괴로울 뿐이지. 힘들 때 작은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것은 축복이다. 어렸을 때 '우리 민족은 한의 민족'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지금은 안 믿고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해학의 민족'이 더 맞다고 본다. 맞았는데 웃고, 자빠졌는데 웃을 줄 아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고 본다. 마음속에 한을 쌓으면서 비수를 갈고닦아 심장에 꽂거나 꽂지 못해 원귀가 되는 것은 이웃나라인 것 같다. 우리는 울어야 할 때마저 웃는 것이 어울린다. 전설적인 짤인 2002년 월드컵에 환호하는 상갓집이나 엄청난 리듬과 박자로 시끌벅적하게 치르는 굿을 보면 그렇다. 내가 잘못 알고 있으면 어떤가 이렇게 믿으면 그만이지! 나이 들면 적당히 얼굴이 두꺼워진다. 힘든 시기가 왔다고 너무 풀 죽어 괴로워만 말고 미친 사람처럼 웃는 것도 필요하다. 혼자 심심하면 같이 망한 친한 친구끼리 '야이 허우대 멀쩡한 그지야!'라고 놀리는 것도 좋겠다. 또는 마통을 뚫은 직장인끼리 누구의 '마이너스 잔액이 큰지'비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구의 공전이 계속되는 한 계절은 계속 바뀌듯이 바닥은 벗어나게 된다. 고점을 찍고 바닥을 딛는 반복은 지구가 멈출 때까지 계속될 거다.
그래서. 지금은 경제 공부하기 딱 좋은 때다
아무 주식이나 사고 코인을 사도 막 오를 때는 힘들게 공부할 필요도 없다.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으로 돈을 넣으면 모두가 돈을 번다. 바닥이 다가 올 수록 넣을 돈도 없고 무리해서 넣어놓았던 돈은 녹아내리니 할 것도 없다. 무리하게 빚을 졌다면 빚 갚느라 다른 생각 하기 어렵겠지만, 빚이 적거나 없다면 경제 공부하기에 딱 좋다. 스스로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면서 주의 깊게 지표를 보고, 뉴스를 챙기면 바닥을 지날 때를 정확히는 못 맞춰도 남들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을 거다. 놀면 뭐 할 거고, 녹아내리는 수익률만 보고 한숨짓는 것은 시키지 않아도 다 할 테니 그런 거 말고 공부하면 좋겠다.
공부하기 막막할 땐 '내 생애 첫 경제 교과서'로 시작하면 매우 좋다. (자체 PPL이지만 스폰을 받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