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선을 짧게 만들기

by Toriteller 토리텔러

인도의 현자 이야기

인도의 옛날이야기라고 한다. 한 왕이 신하들에게 문제를 냈다.

"그대들은 내가 그려놓은 이 선을 짧게 만들어야 한다. 대신, 이 선에 손을 대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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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은 모두 골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선을 짧게 만들려면 선을 일부 지우면 되겠지만 손대면 안 된다고 왕이 명령했으니 풀 도리가 없었다. 결국 신하들은 풀기를 포기하고 그 나라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사람을 찾아가기로 했다. 현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제발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현자는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신하들을 위해 왕에게 같이 가기로 했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온 현자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 현자는 말없이 선이 그어진 벽에 다가가 왕이 그어 놓은 선 옆에 더 긴 선을 그린 후 왕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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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지만 인도의 이야기인지 중국 또는 아랍의 이야기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젊었을 때 한창 유행하던 인도의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이란 책일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이야기를 짜깁기 한 아이들용 책에서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출처가 중요하다고 말해왔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재의 출처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 마음 편하기도 하다.


기준이란 말이 가진 획일성과 자의성

기준은 중심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잣대가 되어 다른 것을 판단하는 데 사용된다. 기준이 잡히면 비교 및 평가할 수 있어 큰 장점이 된다. 기준과 '비교'해서 높은지, 낮은지, 넓은지, 좁은지, 맞는지, 비뚤어졌는지, 잘했는지, 못했는지 따질 수 있다. 기준의 또 다른 장점은 행동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준과 비교한 후 기준에 '맞게' 고친다. 그래서, 기준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기준은 획일적이기 쉽다. 대표적인 것이 법으로 원칙상(!)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획일적으로 평등하다.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 역시 기준에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암묵적인 기준들을 문화, 예의, 상식 , 도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획일적이면서 여유 없이 단단한 기준은 사람들을 옭아매기도 한다. 옛날 기준이 편한 사람은 옛날 기준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꼰대가 되고, 옛날 기준을 이해 못 하는 젊은 사람들은 새 기준을 이해 못 하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버릇없는 것들이 된다. 기준을 지켜서 편할 수도 있지만, 기준에 얽매여서 서로 싸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기준이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문장처럼 기준은 흔들림 없어야 하는데 바뀌어야 자연스럽다.


부자의 기준

부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모두 이미지를 떠 올리지만, 떠오른 부자는 모두 다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각각 정의를 내리는 단어들은 꽤 많다. 난 이런 단어나 개념들을 '회색'이라 부르곤 한다. 회색이 크고 넓을수록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각각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다. 전문용어라 불리는 과학과 학문적인 단어일수록 회색지대가 없거나 적다. 일상용어에서 많이 쉽게 보통 사람들이 쓰는 단어일수록 회색지대는 넓고 심지어 의미도 바뀐다.

회색이 넓은 단어들일 수록 내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 삶이 바뀐다. 부자의 기준을 15억 이상의 현금을 가지고, 서울 강남에 자가주택을 가지고 있으며, 매월 100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고 세우면 그 기준에 미달하는 난 항상 가난뱅이일 뿐이다. 반대로 밥 세끼 굶지 않는 사람이라고 기준을 낮추면 난 부자가 된다.


전국 석차가 명기된 성적표를 받는 것이 아닌데

경제나 재테크, 부자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숫자를 강조한다. 숫자는 명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의 목표는 숫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학생 때 내가 받았던 성적표에는 전국 석차와 몇% 안에 들었는지가 나왔다. 이 숫자들이 중요한 것은 성적으로 입학이 결정되기 때문이고, 점수가 중요한 것은 합격 불합격이 정해지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해서 우위를 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숫자에 매달릴 필요 없지 않을까? 우리가 한우도 아닌데 1등급이 투뿔보다 못하다는 기준을 내 삶에 적용시킬 이유는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부자의 정의는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책에서 본 '부를 더 늘릴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이다. 이 정의를 좋아하는 이유는 숫자로 정의하지 않으면서도 산에서 고사리 캐먹고 팔베개하니 행복하지 않냐는 정신승리를 강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른 욕심의 크기에 따라 목표를 달리 잡을 수도 있으면서도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해서 남과 비교하는 '비교 강박증'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그려진 선 옆에 새 선을 긋기

시골의사의 정의를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부자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하면 좋겠다는 말이다. 숫자로 갈리는 엄격한 기준에 맞춰 허덕이거나 기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는 부의 크기를 정하는 것. 별것 아닌 거 같은데 은근히 재밌다. 내가 생각하는 부자를 정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재테크를 해야 하는 이유와 수준이 정해진다. 재테크는 (내가 정한) 부자가 되기 위한 실행방법이다.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정의는 '꼭 하고 싶은 일에 쓸 수 있는 돈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재테크를 하는 이유 역시 '잘 쓰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모으는 것'이 된다.

나와 같은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 같은 얘기로 남의 기준에 맞출 필요도 없다. 자꾸 왕이 먼저 그어 놓은 선처럼 남의 기준에만 몰두하면 내 기준이 사라지고, 내 삶이 사라진다. 옆에 내가 필요한 선을 하나 그으면 된다.



경기가 안 좋아지니 사람들이 경제기사와 재테크 관심이 점점 떨어집니다. 당연한 일이죠.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일을 계속 쳐다보는 것은 일부 소수의 취향일 테니까요.

그래서, 그동안 미뤄놨던 숫자나 기사 해설 없이 그냥 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하는데 실천을 잘 못하더군요. 이런 분들은 능력이 안된다기보다는 자기 객관화의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자유롭게 쓰고 보여줘도 될 텐데 남들에게 보이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그분에게 그냥 미션을 부여했습니다. 그분이 제 말을 들어야 할 위치에 있지 않지만 제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그냥 압박하는 중입니다. 어떤 글이든 써서 8월 말로 예정되어 있는 브런치 북 이벤트에 응모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분에게만 압박하면 미안하니 저도 어떤 글(?)이라도 써서 같이 응모하는 걸로 압박하는데 힘을 보태보려고 합니다. 안되면... 잠시 안 보면 되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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