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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종이를 받고 감사한 날

by Toriteller 토리텔러


적응 중인 새 일. 아니, 배우는 중인 새 일

미끄덩 거리는 신발 밑창. 어쩌면 다리 힘이 약해진 노화 일지도.

핸드폰 보기도 힘들 만큼 밀착된 퇴근 지하철. 혹시나 다른 사람 몸에 스칠라 신경 쓰이지만 이미 두 대를 보낸 터라 탈 수밖에.

힘들게 집에 왔더니 아직 저녁 못 먹은 아이. 3분 카레라도 돌리려니 안 먹고 학원가겠다 나가고, 열어 본 냉장고엔 배달음식에 서비스로 끼워 준 어묵간장조림 말곤 없는 밑반찬.

한 공기도 안 되는 밥솥의 밥을 공기에 담고 밥 먹는데 밀려오는 피로.

당 채우고 겨우 무중력체어에 누운 지 얼마 지났으려나 퇴근하는 아내.

오늘 유난히 힘들다며 안 먹던 저녁을 챙겨 먹는 걸 보니 안쓰럽기도 하다.


오늘은 재활용 분리수거의 날. 비 오는 날의 선물이라 치고 혼자 두 손 가득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단국대에서 신문이 왔더라!"

"응? 단대? 나한테 왜?"


얼마 전 단국대 학보사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3회 칼럼 기고를 요청하면서 공백포함 1,200자로 맞춰달라고 게다가 회당 원고료도 주겠다고 했는데,

글을 보내니 무슨 큰 일을 한 사람 대하듯 예의 넘치는 메일로 답장을 보내왔었었는데


이건 미처 생각도 못했다.

참 고마운 선물


살다 보면 배려받는다는 기분처럼 고마운 일이 없다.

오늘 뭍은 찌든 삶의 얼룩을 종이신문이 다 닦아줬다.


사실, 단대 학보사에서 제시한 원고료는 내 인생 첫 원고료 보다야 많았지만 요즘 받는 최저치 반절에 반절.

그래도 고마웠고 행복했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어찌 용감하게도 모르는 사람 글을 싣겠다고 했는지,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는 세상에 종이신문 만드는 일을 하는지. 그것도 대학생이.. 아마 지금 주겠다고 한 원고료의 반을 제시했더라도 했을 것 같다.


고민 중이다. 어떻게 보답을 하지? 처음엔 내 책을 사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좋아할까? 가장 좋아할 만한 기프티콘을 보낼까. 어떻게 나눌까?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종이 선물을 받고 감사하는 중이다. 글을 쓰면서도 행복하다.



아! 다음 원고 보내야 하는데... 뭘 쓰지?. 아! 족쇄가 되어 버린 '응원하기' 붙은 브런치 글도 써야 되는데... 응원하기는커녕 조회수와 좋아요 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중인데 내가 왜 시달려야 하는지.... 아! 어린이 동아 그림도 그려야 되는데... PPL은 개뿔... 아! 요즘 브런치엔 올리지도 않았는데... 아! 인스타에도 올려야 되는데... 아! 오늘 누가 제안한 글쓰기 알바 덥석 물었는데.... 아아아 아아아! 다시 찌들 찌들. 쓰기 싫다...


집 팔고 시골로 가면... 회사 안 다녀도 굶지 않고 살 수 있을것 같은데 그렇게 하자고 말하면 집 반절의 주인께서 눈으로 욕한 후 "나랑 잠시 얘기 좀 해"라고 하겠지. 공포로 위축된 자기 검열 후 아무 말 없이 생명 연장을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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