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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글씨의 힘

by Toriteller 토리텔러

국민학교 시절 자주 경필대회를 열었다. 지금도 생경한 단어. 사실 '경필대회'였는지 확신은 없지만 맞는 단어를 찾아내느라 시간을 버리느니 그냥 맞다고 믿는 편이 나아 보인다.

선생님들은 꼭 훌륭한 사람은 '신언서판'이 뛰어나다는 말씀을 하셨다. 글씨는 서(書)에 해당한다고...


대학생이 되면 학보에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마음에 둔 사람에게 보내기도 했다.

연애를 할 때 손글씨로 써 건네준 편지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보물과 같았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되면 카드에 인사말을 써서 돌리는 건 어른의 예의이기도 했다.


컴퓨터가 나오면서 뒤집어졌다.

악필 때문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환호했고,

붓이든, 펜이든 글씨 잘 쓰는 것은 뛰어난 재주에서 굳이 내세우기 민망한 능력이 됐다.

키보드를 두들기면 손글씨 보다 훨씬 빠르게 작성할 수 있고,

프린터에선 규격화되어 하나의 다름도 없는 글씨가 뽑혀 나왔다.


모바일이 되니 잘난 프린터도 점점 밀려난다.

메신저에선 인류가 태어난 이래 제일 많은 양의 문자들이 돌아다닌다.


이제 손글씨는 캘리그래피라는 이름으로 예술이자 독특함을 내세우는

특별한 예술이 되었다.


저자에겐 새로운 '쇄'가 나올 때마다 2권씩 책을 보내준다.

쓴 책이 적은 나의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쇄를 증정받을 때마다

손글씨보다 오래된 관습인 '도장 찍기'를 한다.

(사진의 오른쪽 아래 붉은색 글씨 맞아요)


두권 중 어떤 책에 찍을까 둘러보는데, 책 한 권 위로 뭔가 삐죽 올라와 있다.

뭘까? 설마 카드?


출판사 사람들은 고루하다. 고루하니 종이책을 만들고 있겠지.

그래서, 출판사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도 고루하니까.


아무리 고루해도 인쇄된 카드에 사인만 직접 하는 수준이었는데.

이런!

100% 손글씨로 쓰인 카드다.


어렸을 때 들었던 신언서판이란 기준으로 보면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캘리그래피의 관점에서 보면, 아니 내 관점에서 보면,

만난 적 없지만 이 글씨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색깔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저 글씨를 보고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수제 100%, 손으로 만들어 낸 작품(카드)에서 열심히 마케팅해주겠다는데

월급쟁이이자 훈련된 사회인의 예의 바른말이라도 괜찮다.


감사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KakaoTalk_20231016_211715368.jpg


그리고, 이렇게 난 또 브런치 독자들에게 마케팅을 한다. 나도 뭐라도 해야

새끼손톱만큼이라도 감사의 실천이 될 듯하다.

내 후배에게 추천할 첫 경제책,

청소년 아이들에게 사 줄 첫 경제책,

재테크를 고민하는 젊은이에게 건네줄 첫 경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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