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때 즐거움을 주는 책이 있다. 전문가가 쓴 책.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의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는 항상 들을 것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전문가의 책이 즐겁지는 않다. 보통 그들의 이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잘못된 이야기 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쉽게 쓰는 것보다 틀리지 않게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렵고 불친절하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는 쉽게 쓴 전문가의 글은 읽기에 즐겁다. 전문가의 지식으로 검증한 후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도 알아듣기 쉽게 해주는 이야기는 읽기에, 듣기에 항상 즐겁다.
석유와 에너지
석유는 항상 경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다. 하지만, 아이가 “왜 하늘이 파란 가요?”라는 질문에 “원래 파란 거니까 그렇지”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석유가 왜 중요한가요?”는 “모든 운송 수단에 쓰이고,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한 플라스틱이나, 합성 섬유, 각종 산업에서 필요한 에너지라 중요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몇 가지 질문들은 좀 애매하다.
“미국은 왜 중동에 그렇게 집착할까?”
“셰일오일이 있는데도 중동의 석유가 필요할까?”
“독일 및 유럽은 왜 사이도 좋지 않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받을까?”
“이란과 러시아의 석유를 금지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제제재일까?”
“석유의 수요와 공급은 어떻게 움직일까?‘
“재생에너지는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까?”
등등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답해준다. 흩어져 있고 조각나 있는 지식과 정보들을 하나로 꿰어주는 책. 그동안 단편적으로 쌓인 지식들이 하나로 묶이니 꽤나 유쾌했다. 원유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 좀 더 넓게, 좀 더 깊게, 좀 더 멀리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난 이렇게 얻은 얄팍한 지식을 이용에 나보다 모르는 초보들에게 잘 써먹을 수 있으니 나 같은 지식 유통업자에게는 쏠쏠한 책이다.
책이 주는 장점이 잘 담겨 있는 책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들의 갈래를 나눠 잘 연결시켜 주는 것이 두꺼운 책의 장점이다. 레고를 만들 때 무슨 의민지 모르는 조각들이 연결되고 쌓이면서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책을 읽을수록 모양이 잡히는 기분. 오랜만에 느낀 즐거움. 어릴 때와 달리 한 자세로 책을 오래 읽기도 버겁고, 눈도 침침해지는 늙은 몸의 아쉬움이 들었다. 좀 더 쌩쌩한 눈을 달고 있었다면, 좀 더 졸음을 버텨내도 맑은 정신으로 계속 읽을 수 있는 체력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책의 단점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최신성. 2022년 4월에 발간되었으니 어느새 2년이 되어간다. 2년이면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한다. 고전이나 원론이 아니라면 책은 급격히 늙어버린다. 그래도 과거의 이야기와 큰 흐름만큼은 그대로니 얻을 것은 충분하다.
석유와 에너지(재생에너지 포함)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렵지 않게 개념을 잡기에 훌륭하다. 거듭 말하지만 쉬운 말로 번역서의 어색한 말투가 아닌 한국어로 쓰인 책이라 더욱 좋다. 대신,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읽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생에너지 부분은 계속해서 변할 것이라…
나중 활용을 위한 토리텔러씨의 메모
인류 역사 속 에너지는 숨은 최고 권력자와 같았습니다.
1차 산업혁명을 석탄과 증기기관이…. 2차 산업혁명은 석유와 전기 사용 (5 페이지)
지난 세기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달러 패권 구축과 소련 붕괴의 배경에는 석유가 (11 페이지)
결론적으로.. 인류가 마주한 최우선 과제는 탄소감축과 에너지입니다. 인류의 생존과 직결… (14페이지)
최근 수년간 한국의 5대 수입품목 중 세개가 석유, 석유제품, 천연가스였다. (페이지 29)
우리 일상의 ‘기본 값’ (페이지 32)
미국의 패권도 미국이 중동 산유국을 장악하고, 석유의 주요 수송로 등을 포함하는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페이지 36)
국제관계에서 무력을 쓰지 않는 제재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은 석유, 가스, 석탄 등 에너지 자원의 공급을 막거나 자원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페이지 36)
2010년 이후 셰일혁명으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10년 사이 약 두 배 이상 증가… 미국은 2018년 세계 1위의 산유국… (페이지 41)
석유가 오늘의 세상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경제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국제유가다.
1970년대 후반에는 30달러 이상이 된다. 그리고 이 상승은 달러의 수요를 크게 늘리면서 달러의 지위를 지켜 주었다. (페이지 51)
지금도 중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이다(페이지 51)
만약 미국이 중동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전면 철수할 경우, 지역 패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는 이란이다. (페이지 60)
미국이 중동에 개입하는 근원적 이유는 중동에 석유가 있기 때문이다… 패권 국가로서 미국의 정치력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상품’의 저장고를 자국의 영향하에 두었다는 점에서 나온다… 에너지 수급 차원에서 중동의 중요성은 감소했으나 중동의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페이지 82)
러시아는 자원강국이다. 천연가스는 세계 2위, 원유는 세계 3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러시아의 핵심 이익은 원유와 가스의 안정적 공급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페이지 68)
유럽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독일에게 대체 공급처 확보는 중요한 이유였다. (페이지 75)
생산량 조정을 통해 유가를 결정하는 스윙 프로듀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OPEC+다. (페이지 98)
개념과 약속으로 존재하는 유가는 가볍고 크게 움직인다. 급등과 급락의 반복은 물론이고, 시장 참여자의 의도에 따라 왜곡되거나 거품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실물로 존재하는 석유 소비량은 급증과 급감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여 왔다. (페이지 107)
석유 수요는 식량을 제외한다면 다른 어떤 상품 수요보다 인구와 상관관계가 높다. (페이지 109)
석유의 용도별 비중 (페이지 113)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석유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페이지 123)
한국, 중국, 일본 연료원별 발전량 및 비중 (페이지 148)
유럽 주요국의 발전원별 비중 (페이지 154)
한국의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은 28.4%로.. 제조업 중에서도 전력 소비가 큰 철강,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중공업의 비중이 높다. (페이지 156)
재생에너지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지만, 석유 수요도 쉽게 꺾이지 않는 형태로 에너지 시장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