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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iteller 토리텔러 May 06. 2024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

이지은 지음. 모요사

책 읽는 즐거움

적절한 두께, 읽은 뒷 뭔가 배웠다는 듯한  만족감, 밑줄 치는 행위, 마지막으로 소유. 이 모든 것들이 다 만족스러운 책이다. 학위 증명서처럼 책을 읽고 나면 증명서가 하나 남는다. 물리적인 책. 어렸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고 나니 이제 책을 한번 읽었다고 해서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잘 정리해 놓은 설명서를 읽고 나서 몰랐던 것을 배우는 만족감을 느낄 뿐이다. 책을 한 권 읽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유튜브에서 요약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나서 해당 영화를 봤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매력적인 19세기. 그리고 저자

19세기는 저자의 표현대로 기계적으로 나누면 1801년에 시작해 1899년에 끝난다. 별 관심 없는 시기였고, 그저 단편적으로 알던 시기였다. "나때는 말이야..."라고 말하기에도 너무 오랜, 그렇다고 아주 옛날이라고 말하기는 어중간한 그런 시절이라 관심이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무관심한 내게 저자는 자신의 스타일과 문체로 19세를 들려준다. 자기의 말투로, 전문가로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 읽고나서 든 첫번째 생각은 '만족스러운 책 리스트에 올려야 겠다'는것. 그리고 몇몇 19세기 이야기와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떠올라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19세기로의 여행

1장과 2장은 19세기로 끌어들이는 배경이다. "자 19세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라는 세계관이다. 공간적 배경인 파리라는 도시의 변화. 관념적 공간인 '부르주아들의 럭셔리'세계.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내심 쉽게 쓴 학술서 같은 정도라 여겼는데, 본격적으로 속도를 낸다. '근대의 예배당, 기차'에서 독자를 태우고 19세기로 빠르게 매혹적으로 진입한다. 친근하면서 잘 모르던 세계로 이끄는 기차. 지금 봐도 '어머 이건 사야 돼'라고 할 만큼 매력적인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기차를 태워서.  


19세기로 초대한 기차에서 내리면 백화점, 만국박람회가 우릴 맞이한다. 화려함을 끌어내는 마케팅과 장소로서의 백화점.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든 엑스포와 박람회를 다 모아 놓은 듯한 '만국박람회'는 19세기가 21세기의 직계조상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우린 21세기에 살지만, 우리가 몰랐을 뿐 19세기의 세례를 그대로 입었다. 


가장 놀라웠던 미식, 그리고 '인상파, 여자를 그리다' 

이 두 챕터만으로도 책 값을 다 했다. 

'미식'을 뜻하는 단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가 프랑스어 사전에 등재된 것은 1835년의 일이다. 
19세기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가스등이 점차 보편화되고 전기등까지 등장하면서 저녁 식사 시간은 점점 뒤로 늦춰졌다. 
요리사, 스타로 떠오르다
42퍼센트의 요리사가 삼십대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토네트의 14번 의자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이 어떻게 미식에 빠져들었는지, 어떤 환경이 그들의 미식을 도왔는지, 어떤 인물이 주도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발전했는지. 프랑스 요리에 대한 막연한 '대단함'이 어디서 왔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저자의 장점은 어렵지 않게 다양한 것들을 흐르듯 보여준다. 미식에서 요리사로, 요리사의 실제 생활로 세심히 안내한다. 이 세심함은 다음 장에서 가장 빛난다. 


'반쪽짜리 사교인'이라는 뜻인 '드미-몽뎅demi-mondain'
일하는 여성 대부분은 우유와 빵만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그러다보니 빈혈과 결핵을 비롯한 '가난한 자들이 걸리는 병'에 쓰러져 갔다. 
마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폴리베르제르의 바>의 주인공인 쉬종Suzon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각, 베르쇠즈인 쉬종은 하엽없이 손님을 기다린다. 
내일이 어찌 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런 여성들은 비싼 돈을 주고 어엿한 모델을 고용할 수 없었던 젊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좋은 모델이기도 했다. 
엘리트 남성이라면 라틴어를 할 줄 알아야 하듯 곱게 자란 여성이라면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한다는 공식이 상식처럼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한 집안의 안사람으로서 언제 감사 편지를 보내야 하는지, 저녁 초대의 메뉴는 어떤 것으로....'집 안 살림의 예술'같은 책들이 수십 판씩 쇄를 거듭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19세기의 여성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적나라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게 소개할 수 있을까? 사교계에서 몸 하나로 권력과 부를 누린 소수의 여성들. 젊음을 갈아 넣어 버티며 살던 다수의 여성들. 부르주아 여성들의 새장에 갇힌 삶까지 잔혹한 이야기를 잔잔히 그리고 찬찬히 이야기해 준다. 이 19세기 여성들은 사진이 아닌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그대로 새겨진다. 그동안 오르세 미술관 인상파 그림에 숨겨져 있던, 그림책에선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그림속 모델들의 숨겨진 이야기라고나 할까.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그리고 주인공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던 이제 내게 다른 작품이 되었다.  


간만에 불편한 자세를 이겨내면 읽었던 책이다. 학습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서 읽던 경제책과는 달리 부담감이 없이 읽었는데, 마음에 자국이 많이 남는다. 


이 책은 흑백으로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책에 담긴 이미지와 그림은 꼭 그 느낌을 그대로 봐야 한다. 사진이 아니지만, 사진보다 또렷한 상징을 남긴 그림과 온갖 카탈로그는 사진보다 더 강렬하게 그 시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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