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가능성 50%를 염두에 둔 이별이 의미하는 바가 상상이 되시나요?
조건부 이별? 정도라고 하면 적당할는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설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과정이 바로 '만남'과 '이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서도 업무를 볼 때나 서로의 안부를 물어볼 때나 서로가 비대면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바로 '만남'과 '이별'은 상황에 따른 뉘앙스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인간 사이의 공통된 '프로토콜(약속, 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인 간의 이별... 장미꽃을 바라보며 행복한 상상을 해 왔던 순간이 지나, 장미의 가시에 찔리고 할퀴어서 피를 흘리며, 아픔을 경험하는 순간?
비록 아픔은 있으나, 내가 흘리는 피로 장미가 더 잘 자랄 수 있게 할지, 지금 당장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붕대와 연고로 상처를 치료할지는 개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부모 자식 간의 이별 (영영 떠나보낼 때)...
가족 간의 이별 (영영 떠나보낼 때)...
공통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리셋이 되는 느낌.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공장에서 막 출하한 그런 상태로 일정 기간 지속되다가, 그동안 고인과의 기억을 디스크 저장공간에 차곡차곡 저장을 해 나갑니다. 때로는 디스크 저장의 과정에서 오류도 날 수가 있고, 이를 보정하기도 하는데, 정리의 과정은 시간이라는 미명 하에 오랜 시일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업무 상 동료와의 이별 (대부분 이직, 퇴사로 인한 이별)...
바로 앞에서 이야기 한 조건부 50%에 해당하는 이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어질 듯, 끊어질 듯 거미줄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파리처럼 사회생활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억압과 (본인이 느끼기에) 불합리한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는 해방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기존의 전임자가 해왔던 업무를 인수인계 혹은 생각지도 않은 일을 떠맡게 되어 '남아 있는 자의 저주?'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 편으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은 자는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그들만의 어려움과 고민이 있고, 떠나는 자는 지금 당장 떠날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사정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리스크도 있습니다.
결국, 세상이 항상 정의롭고 공평하다는 편견 아닌 편견을 깨는 순간, '나만의 삶'이 보이는 계기가 됩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다고 인정하면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만의 삶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 신곡, '지옥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