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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글쓰기 Jan 10. 2024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다

사고가 나려면 삼각파도가 친다

사표를 내고 나오던 날은 7월 중순 무더운 날이었다. 지하철을 내리니 젊은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새로운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였다. 예전부터 업무상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돈 들어가지 않는 사업 있다고 제안해 왔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이었다. 신용카드로 먼저 자금을 결제하고 물건을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자본이 들어가지 않는 사업이었다. 


그 당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때였다. 마치 80년대 수입 오퍼상 같이 하루에도 수십 개 회사가 생겼다. 두 젊은이는 전자상거래 창업 교육을 받아 전문성도 있어 보였다. 나 자신도 새로운 직업을 찾던 중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끌게 되었다. 마치 화곡동 물류단지에 위치가 좋은 사무실이 나왔다고 하였다.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계약한다"라고 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아 다음 날 2천만 원 주고 전세 계약을 하고 세 명이 동업하기로 했다. 젊은이들은 용역 제공하고 나는 자본투자 하는 조건이었다. 하루 만에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어떻게 하루 만에 사업을 시작했는지 귀신이 끼었던 모양이다. 순간적인 결정이었다. 결국, 이렇게 시작하여 실패의 씨앗이 되었다. 


그 당시 화곡동 물류단지는 청계천 상가에 있던 사람들이 교통이 불편해지면서 집단으로 이주해 왔다. 중국제 생활용품이 인천항을 통해 컨테이너로 들어오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해야 했다. 개천을 덮었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하수구에 물이 넘쳐흘렀다. 처음 취급 품목은 중국에서 수입한 생활용품이었다. 주력상품은 스팀 청소기였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구매를 했다. 도매상 주인은 사업자에게는 싸게 팔고 소비자에게 비싸게 팔았다. 주인은 소비자인지 사업자인지 척 보면 알았다. 


 물건 구입 같은 중요한 일은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을 직원을 시켰다. 직원은 모두 3명인데 나는 대기업에서 하던 버릇으로 직접 하지 않고 직원을 시켰다. 그러나 사업은 계획대로 잘 진행이 되었다. 판매량도 증가해 여직원 한 명을 보충하기도 했다. 아내에게 이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했다.


어느 날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저녁 늦게까지 일했다. 주문량이 많아 늦게까지 일 처리하는 줄 알았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진공청소기 공급처에서 더 이상 물건 공급이 안되었다. 수입업자의 판매 허가 없이 불법으로 유통된 물건이었다. 물건 공급이 안 되니 신용카드로 선급으로 지급한 구매자는 물건이 오지 않는다고 경찰에 사기죄로 신고한다고까지 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경찰서에 한번 가 보지 않던 사람이 경찰서에 가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똑같은 물건을 사들일 수 없어 배 이상 비싼 물건으로 사서 보상해 주었다. 공급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품목 좋고 가격 싼 물건 찾는 게 전자상거래사업의 포인트이다. 그러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다. 대량으로 물건을 사야 싸게 사들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에는 자본이 필요 없다는 얘기도 잘못된 얘기였다. 사업이 계속 진행되면서 팔리지 않는 재고가 생겨 자금 부담이 됐다. 겨울철에는 자동차 바퀴 체인이 많이 나갔다. 차종에 따라 종류도 다양했다. 물건에 하자가 생기면 AS 하기가 어려운 게 문제였다. 


취급 품목을 화장품으로 바꾸기로 하였다. 모델 번호가 있어 관리하기가 쉬울 것 같았다. 종류가 수천 가지가 넘었다. 품목 파악하는 데만 3년이 걸린다고 했다. 물건을 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전문가들은 5분이 걸리면 나는 30분이 걸렸다. 도저히 경쟁력이 없었다. 제시간에 물건을 발송시킬 수 없었다. 더 생산하지 않는 물건은 다른 물건으로 대체해야 하는데 그런 요령을 몰라 반품 처리하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 또 좋은 물건은 대량으로 사야 하므로 자금이 많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력과 신용도 좋은 인터파크, 11번가, G마켓 같은 대형 쇼핑몰 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소자본으로 운영하던 곳은 거의 문을 닫아 버렸다. 그 당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은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 지원을 많이 했으나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수입은 예상 밖으로 적고, 임대료 관리비 인건비 등 고정적으로 월 1,000만 원씩 나갔다. 1년을 버티다 도저히 더 진행할 수 없었다. 


사회에 나와 보니 경쟁력이 대단했다. 웬만한 전문성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아래 한글이나 엑셀 하는 것을 보고 인터넷 실력이 있는 줄 알았다. 인터넷을 전혀 할 줄 몰라 업무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 우선 퇴직 후 인터넷을 배웠어야 했다. 


결국, 준비 안 된 창업과 전문성 부족으로 퇴직금을 날렸다. 적어도 퇴직 후 1년 이상은 창업 준비를 해야 했었다. 그 당시 창업 준비 학교가 있는 줄도 몰랐다. 너무 성급하게 서둘렀다. 빨리 출세하고 싶은 욕심에 다른 생각이 안났다. 아내와 주변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성급하게 서둘렀던 게 화근이었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사고가 나려면 도저히 내힘으로 막을 수 없는 삼각파도가 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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