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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지닌 의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야기가 있는 다큐 드로잉 8

by 까칠한 서생

※ 이 글은 수정·보완되어 2025년 11월25일 출간된《베이비부머, 네 겹의 시간을 걷다》(루아크 펴냄)에 수록되었음.


1.

정호승의 시 <서울의 예수>에는 예수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유신 정권 말기인 1979년에 발표된 이 시에서, 시인은 예수를 통해 억압된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담배는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지식인의 사유와 고뇌를 의미한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에서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며 기성세대의 위선을 조롱하고 자신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나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학교에서는 금지된 것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흡연은 어른이 되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여기서 담배는 성장과 반항의 의미로 등장한다.


192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는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달리, 피카소 등 예술가들이 담배 연기 속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담배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예술가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의미하는 소품으로 활용된다.


반면, 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에서는 담배가 뉴욕의 도덕적 타락과 부패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주인공 트래비스는 담배를 문 채 거리를 배회하는 마약상, 포주, 창녀, 깡패들을 보며 중얼거린다. “온 도시가 썩었어. 쓰레기들이 넘쳐나.” 여기서 담배는 부패와 타락의 의미로 표현된다.



미드나잇인파리.jpg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한 장면


2.

담배는 ‘의미’였다. 단순한 상품이나 기호품을 넘어 시대와 문화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는 뜻이다. 담배는 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이기도 했고, 사유와 여유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때로는 교류와 소통의 매개체가 되었고, 때로는 고독과 번민의 벗으로 함께 했다. 애연가들은 각자의 시공간에서 이러한 의미를 누리며 담배를 즐겼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담배는 질병, 퇴폐, 미개, 불량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제 담배는 오로지 반문명적 상징으로만 남았다. 이를 ‘담배 의미의 일극체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가 담배의 부정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가운데, 결국 나도 담배를 끊었다. 열아홉 살 재수생 시절에 배운 이후 사십여 년 간 희로애락의 순간을 함께했던 담배를 미련 없이 떠나보냈다. 지난 세월에 두어 번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한 금연을 이번만큼은 성공시킬 수 있을 듯하다. 단순히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다. ‘담배 의미의 일극체제’에 저항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3.

우리나라에서 담배는 오랫동안 민초들의 삶과 함께 했다.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한 독일인은 “대한제국의 남자들이 얼마나 골초인가 하면, 그들이 평생 피운 담배 연기만으로도 베를린 국립보건소 인원 전체를 쓰러뜨릴 만하다. 그런데도 조선 남자들은 모두 건강해 보인다”라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은 1980년 79.3%로 정점을 찍은 다음 2023년 19.6%로 급격히 감소했다.


대표적인 애연가였던 시인 오상순(1894~1963)은 하루에 200개비의 담배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중 140개비는 자신이 피우고, 60개비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의 호 ‘공초(空超)’가 실은 ‘꽁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동곡(異音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 물들어 스며든다.” 담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구절이다.



4.

2004년 11월 18일,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는 “원고료 인하 등으로 문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창작 아이디어의 유일한 벗’인 담배 가격마저 인상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소설가와 비흡연 문인들이 함께 ‘담뱃값 인상 반대 문인 집회’를 열기도 했다. 문인들에게 담배는 창작의 영감을 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이에 즉각 반박했다. 담배는 녹내장과 노인성 황반변성을 유발해 시력을 저하시킨다, 글 쓰는 사람은 장시간 앉아 있어 운동량이 적은데 흡연까지 한다면 동맥경화증과 순환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 흡연자는 40대 이후 기억력 감퇴 속도가 빠르고, 담배 속 일산화탄소로 인해 오히려 정신 집중이 방해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흡연하는 작가의 글이 담배를 미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며 금연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인 단체는 담배를 인문학적 기호로 보았지만, 금연 단체는 이를 과학적으로만 진단한 것이다. 창작의 열정에 과학적 논리가 찬물을 들이부은 격이라고 할까.



5.

담배는 과연 문인들의 바람처럼 ‘창작 아이디어의 벗’일까, 아니면 금연 단체의 주장처럼 만병의 근원일까.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논쟁 이후 담배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 급격히 후자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우아하고 고고한 위치를 지켜온 담배의 의미는 이제 독극물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그것이 객관적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우리가 담배에 부여했던 다양한 의미와 가치는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그 점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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