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파면 선고를 보고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치른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컸다. 그리고 이 당연한 한 마디를 막으려는 세력의 저항은 너무 완강했다. 우리 국민이 위대하다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훌륭하다고? 내가 보기엔 별로 그렇지 않다. 위대한 국민이면 첨부터 그런 대통령을 뽑지 않았을 것이고, 훌륭한 민주주의면 그런 상황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겠지.
역사는 발전하지 않고 반복될 뿐이다. 이번에도 큰 희생을 치른 후 겨우 원상회복되었을 뿐이다. 우리 역사는 늘 이렇게 도돌이표 역사였다. 동학 때도, 4.19 때도, 6월 항쟁 때도, 박근혜 탄핵 때도...
윤석열 파면은 시작일 뿐이다. 내란 잔당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선 안 된다. 암세포를 제거하고 주변장기에 전이된 세포를 없앤다고 건강해지는 게 아니다. 먹고 자고 쉬고 일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건강해야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앞에서 내란 '잔당'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 세력이 우리 역사의 '본당'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누구인가. 인조반정 이후 노론에서 시작되어 장김 등 세도가, 친일파와 친미파, 군부독재와 검찰독재를 주도했거나 그에 부역한 세력이 아닌가. 신영복 선생의 말마따나 인조반정 이후 우리나라의 주류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노무현과 문재인의 사례에서 보듯, 그들은 다시 여기저기서 민주당 정권을 마구 흔들어댈 것이고 또 허무하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5년 아니 개헌을 해도 기껏 8년 임기의 정권이 근본적 변화를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당선되려면 중도층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근본적인 개혁을 하겠다면 중도 표를 얻기 어렵다. 그러니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적 개혁은 어렵다는 야그다. 민주주의의 딜레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근대의 거의 모든 사상가들도, 심지어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국가라는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도 민주주의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이었다.
좀 엉뚱할지 몰라도, 난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를 지지한다. 그가 말하는 철인이란, 선량하고 현명하면서도 강단 있는 독재자쯤으로 이해한다. 그런 인물이 나타나 적어도 20년은 집권하면서 사회 구석구석 다 뜯어고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