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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Oct 09. 2021

법치라는 이름의 야만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가지겠다는윤석열의 사법개혁안은 검찰에 봉건적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시민계급(부르주아지)이 근대사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법을 통해 봉건적 기득권 세력의 특권을 없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특권을 없애야 할 법이 특권을 지키기 위해 이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무리, 악법을 제정·유지하거나 개혁 법안을 저지하는 무리, 법의 해석을 독점해서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무리들이 손을 잡고 카르텔을 만들어 새로운 특권세력이 되려 하고 있다. 특권은 엄청난 지대 수익을 통해 막대한 경제자본은 물론 강력한 문화자본과 사회자본까지 낳는다. 그렇게 특권으로 만들어진 자본은 대물림되면서 대를 이어 특권세력을 탄생시킨다. 250년 전 특권세력을 없앴던 법이 새로운 특권세력을 낳게 된 이 엄청난 반전! 움베르토 에코의 의문대로 지금은 과연 포스트모던(탈근대)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지금처럼 법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시대가 또 있었을까. 통치 차원의 정책적 결정사항이  법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정적 과거사를 법적으로 옭아매는 데 혈안이  탓에 정책논쟁은 사라졌다. 합의와 숙의, 자치와 참여, 절제와 관용, 덕성과 공동선 추구와 같은 공화주의적 가치들은 실종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가 무색해진다.


고소/고발의 창구나 수사의 주체가 검찰인지 경찰인지 공수처인지, 검찰이라면 어느 검찰 내 어느 조직인지에 따라, 사법부의 경우 판사의 프로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사람이 하는 일이라도 사람의 인성과 세계관에 따른 오차를 줄이기 위해 명문화 된 법이 있는 건데, 원님재판처럼  누가 어디서 진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니, 무슨 그따위 법이 아니 그따위 법조인이 있을까 싶다.

현재 거대양당 두 대선후보를 포함해 유력 대권주자였던 사람들이 모두 법조인 출신이거나 법 전공자라는 사실도 새삼 놀랍다. 비리 혐의에 연루되어 연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들도 대부분이 법조인, 그것도 고위급 법조인이라는 사실도 적잖이 당혹스럽다. 게다가 문제의 그 법조인들이 거의 특정대학의 법대, 즉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라는 점도 우리를 허탈하게 만든다.


대학입시를 치뤄본 성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서울 법대는 성공의 아이콘으로 언제나 대학입시 배치표의 맨 꼭대기를 차지했다. 수험생 때든 대학재학 때든 사회생활을 할 때 서울법대는 출세와 명예가 보장되는 선망의 학과로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을  만큼, 경제자본이나 사회관계 자본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는 최강의 문화자본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대학입시에 포획되었음을 감안하면, '서울 법대 진학-사법고시 합격-법조계 및 정관계 진출-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라는 경로 막대한 부와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최고의 엘리트코스로, 곧 우리나라 교육의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성이나 덕성도 갖추지 못한, 비리에 얼룩진 철면피 서울법대 출신들을 보면서, 이는 우리나라 정계법조계의 파탄이기도 하지만 능력지상주의meritocracy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파탄이라고 판단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니 정계나 법조계도 제 자리를 찾아야 되겠지만, 교육제도도 공동체와 공동선의 가치를 핵심으로 삼아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GDP 3만불 돌파와 선진국 진입, 연이은 아카데미상 수상, BTS의 빌보드차트 석권, '오징어게임' 전세계적인 열광 도취해 있는 사이, 기술자들은 굳건한 카르텔을 형성해서 더욱 미쳐 날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는 문명(=법치) 위장된 야만사회일 뿐이다. 이 새로운 야만사회에서는 돌도끼나 돌칼 대신 법봉이나 법전들고 짐승 가죽 대신 법복을 입은 신종 야만인들이, 노루나 사슴고기 대신 전관예우나 개발이익 따위의 기름진 음식을 배터지게 먹게  것이다.   


1978년 구 소련 출신의 노벨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은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현대 자유주의가 '법치주의적' 삶에 의존한다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옳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고, 아무도 그가 완전히 옳지는 않다고 말하지 않으며, 이런 권리를 자제하거나 포기하라고 촉구하지도 않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희생과 이타적인 삶을 살라고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말은 그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자발적인 자제는 지극히 드문 일입니다. 누구나 법의 틀을 극한까지 확장하고자 합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


모든 이슈가 법으로 재단되고 모든 판단이 법으로 귀결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우리는 지금 나쁜 사회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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