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배반한 근대』를 발간하며
2023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기 행사의 슬로건은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였다. 우리 사회가 퇴행의 모습을 보이더라도 역사는 조금씩이라도 진보하는 것이니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임을 알겠다. 하지만 퇴행과 야만의 현실 앞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듣고 위로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뭔가 안이하고 태평스러운 느낌을 주는 데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생전에 그토록 강조한 ‘참여’와 ‘주체적 실천’의 정신이 빠져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슬로건에 대한 비판은 뜻밖에도 20세기 초 한 걸출한 경제학자의 발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케인스는 정부의 시장 개입은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를 망친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장기(長期)는 현재 문제에 대한 잘못된 안내자다. 태풍이 오는데, 태풍이 지나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바다는 다시 평온해진다는 말만 들려준다면 경제학자들은 너무 안이하고 쓸모없는 짓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맥락에서 "장기적으로 사람은 모두 죽는다.”라는 유명한 경구가 나왔다.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해왔고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역사는 온갖 시행착오와 퇴행을 겪어도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을 지녀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생각은 심히 흔들렸다. 거듭되는 우리 사회의 퇴행을 지켜보면서 역사는 진보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자유니 계몽이니 민주니 법치니 시장이니 하는 그럴듯한 가치를 내세운 근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우리를 배반한 근대』는 그런 의심의 산물이다. 나는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원래 나는 발전 사관을 믿는 편이라 늘 희망과 기대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았다. 직선으로 곧바로 가든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가든 역사가 발전한다는 관점에 서서, 나중에 벌어진 역사적 현상은 이전보다 더 나아진 현상으로 보려 했다. 그래서 기후변화, 불평등, 능력주의, 극단적인 자유주의, 공동체의 파괴 등 크고 작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근대는 인류의 삶이 이전보다 나아진 상태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앞에서 나열한 그 문제들은 찬란한 빛 뒤로 어쩔 수 없이 드리우는 그늘 정도로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이 오랜 고정관념은 조금씩 무너져갔다. 그런 변화에 영향을 미친 책 가운데 하나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그는 이 책에서 1만 년 전 일어난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 사기 사건’이라고 모질게 평가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업혁명이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는 점,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나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는 점 등을 열거하며 이를 농업혁명이 최대 사기였음을 주장하는 논거로 제시했다.
내가 보기에 하라리가 농업혁명을 사기죄로 기소하며 열거한 죄목보다 근대의 죄목은 두 배 이상 많다. 그렇다면 먼 훗날 근대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졌다. 하라리와 같이 까칠한 역사학자가 나타나 앞에서 열거한 문제들을 들어 근대가 농업혁명보다 더 큰 사기 사건이었다고 비난하지는 않을까? 역사의 발전과 인류 전체의 행복에 기여하리라 믿었던 근대의 가치들이 과연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고 있는가? 아니 오히려 우리의 기대를 배반해온 건 아닐까?
나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런 의문을 안고, 그동안 대충 알고 있었던 근대를 시작부터 다시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이 책은 기존의 통념을 뒤틀어보고 보편화된 상식을 거꾸로 보고 고정관념을 뒤집어보며 근대의 참모습을 찾아 떠난 여행의 기록이다. 주로 책을 그 여행의 가이드로 삼았으나 때로는 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광고, 대중가요, TV 프로그램, SNS 영상과 동행하기도 했다.
나는 이들 콘텐츠를 통해, 근대의 가치들을 감싼 화려한 허울을 벗겨내고 날것 그대로의 속살을 들춰보려 했다. 그 결과 이들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뜻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탄생했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 작동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근대의 가치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 셈이다. 이 책의 제목을 『우리를 배반한 근대』라고 정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역사는 죽었다 깨도 진보한다는 믿음을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전형적인 보수적 태도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란 역사가 진보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역사는 진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고를 갖춘 사람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우리 사회에 그런 ‘유연한 진보주의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책을 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어떤 친구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그가 요즘 관심사가 뭐냐고 묻기에 “근대”라고 답했더니 그는 “난 미래인데 넌 근대군.” 하고 대꾸했다. 그의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농담을 섞은 비아냥으로 들렸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때 웬 구닥다리 같은 데 관심을 갖느냐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때 하지 못한 대답을 여기서 하려 한다. “친구여,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까닭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란다. 난 연어의 심정으로 근대로 거슬러 오르는 거야. 거기에 근대를 넘어설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