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을 뺀 <노량>
<노량: 죽음의 바다>에 관한 진심 리뷰
2023년 마지막 밤은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며 보냈다. 내 보기에 이 영화의 미덕은 두 가지. 첫째는 한중일 3국을 합쳐 1천여 척의 전함이 부딪혀 싸운 해전의 스펙터클을 보는 재미. 바다 촬영은 전혀 없었다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CG의 수준과 기술력이 놀랍다. 둘째는 3국 장수들이 막후에서 벌이는 밀당을 보는 재미. 특히 명나라와 일본 각국 내 장수들은 치밀한 수싸움을 통해 단순한 선악의 구도로는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 갈등의 서사 속으로 안내한다. 문제는 이 때문에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동아시아 역사를 바꾼 영웅 이순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
"<노량>은 전쟁의 종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현장(賢將)으로서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혜롭고 문무를 겸비한 모습이라 김윤석 씨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이렇듯 김한민 감독은 '현장(현명한 장수)'으로서의 이순신 캐릭터를 염두에 두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혜롭고 문무를 겸비한 것이 김윤석 배우의 원래 이미지인지도 의문일 뿐더러, 그가 스스로 그런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 눈에는 시종일관 슬픈 표정만을 짓는 등 경직된 연기를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역사해석에서 '이순신 자살설'이라는 유력한 시각을 배제한 점도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자살설을 전제로 했으므로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갈등을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김훈의 역사소설 <칼의 노래>와 비교된다.
국뽕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보자. 결과적으로 <노량>은 전투를 재현하는 데서는 성공했으나 캐릭터를 살리는 데서는 많이 미흡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