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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ul 29. 2021

영국에서 운전 못 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영국에선 영어보다 운전이라는데

  

  한 달에 한 번 있는 남편의 휴가. 마침 아이들 여름방학이라 예약해둔 레고랜드를 가기로 한 날 아침, 둘째가 가기 싫단다. 집에서 쉬고 싶다고. 혹시나 해서 이마를 짚어보니 살짝 따끈하다.      


  “내가 선율이만 데리고 다녀올게.”

     

  그래, 어쩔 수 없지. 날씨가 안 좋아서, 학년에 확진자가 생겨서 자가 격리하느라 이미 두 번을 미룬 터라 더 미룰 순 없다. 큰아이와 남편만 서둘러 챙겨 보내고 선우랑 집콕행. 엉망인 줄 알면서도 못 본 척했던 서랍장과 옷장 정리를 마치고 콩나물 뭇국을 끓여서 점심을 먹이고 나니 ‘카톡-카톡-카톡 카톡!’ 속속들이 도착하는 사진. 닌자고의 주인공이 된 듯 놀이기구를 타고 활짝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좋겠다. 나도 가고 싶었는데......”

     

  종일 쓸고 닦고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을 하며 언제 오려나 기다렸다. 저녁 6시가 되어도 집으로 출발했다는 얘기가 없으니 슬며시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저녁 8시가 가까이 되어 도착한 그들.     


  “아, 피곤하다.”     


  돌아온 남편의 첫마디를 들으니 화가 불쑥 치밀었다.     


  “온종일 놀고 와 놓고 뭐가 피곤해? 그러게, 일찍 좀 오라니깐.”     


  “뭐 하나 타려면 줄을 한 시간씩 서는데 어떻게 빨리 와? 운전을 왕복 두 시간이나 했는데 피곤하지 그럼.”     


  “......”



    

  내 인생의 아킬레스건인 운전. 운전을 하면 날개를 다는 거라는데 그 날개 아직 제대로 달아본 적이 없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운전을 잘하면 레고랜드는 내가 데리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부모 중 하나가 집에 있어야 할 때 남편이 나가고 내가 집에 있게 되는 이유는 주로 운전 때문이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나니 마음이 안 좋다. 이럴 때 멋지게 차 키를 뽑아 들고나가 한 바퀴 바람을 쐬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텐데.   

  

  운전 겁쟁이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30대 초반 운전면허시험을 칠 때 도로주행이 너무 무서워서 ‘면허만 따면 다시는 운전을 안 하리라’ 다짐한 사람. 큰애 어린이집 다닐 때 용기를 내어 도로 연수 20시간을 받았지만 둘째 임신 사실을 알고 그만두었다. 둘째가 어린이집 다닐 때 추가 연수를 다시 20시간 받았으나 내 운전 실력은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다.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하지 않았고, 혼자 다닐 땐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아이들 학교와 대형마트가 있고 마을버스가 아파트 앞까지 들어오는 환경에서는 차 없이도 그럭저럭 살만했다.     


  그런데 영국에 오니 상황이 달라졌다. 입국 전에 영국에 사는 한국 엄마들이 모여있는 네이버 카페에서 “영어보다 운전”이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Thank you."만 할 줄 알아도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지만, 운전을 못 하면 당장 마트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단다. ‘아니, 그 정도란 말인가.’ 영국에 와서 아이가 배정받은 초등학교를 보니 역시나 차로 10여 분을 가야 하는 거리. 영국은 초등학교 5, 6학년이 되기 전까지 무조건 보호자가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고, 하교 후 데리고 와야 하는 시스템이다. 퇴로는 없다. 동네 운전학원을 검색해서 영어로 12시간 연수를 받고 운전을 시작했다.     


  ‘혼자 역주행을 하면 어쩌지...’     


  운전 연수를 받기 전에는 운전석 방향이 반대라는 사실부터 겁이 났다. 하지만 실제 운전을 하니 나 혼자 도로에서 운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차들도 함께 달리고 있기 때문에 방향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봐야 하는 게 낯설었지만, 의식적으로 반복하니 점차 익숙해졌다. 문제는 너무나 좁은 도로. 그마저도 양쪽으로 주차된 차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가야 하는 난코스가 많다. 그 상황에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보면 등에서는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무엇보다 영국의 흔한 회전교차로(Roundabout)는 내게 쥐약이다. 주로 신호가 없기 때문에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끼어들어야 하는데 만년 초보운전자에게는 쉽지 않다. 내 뒤로 차가 쭉 늘어져 있는 상황에서 그 부담감이란.        


  그렇게 1년 학교와 집을 왕복하다 갑자기 집주인이 재계약을 못 하겠다고 해서 예상치 못하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기왕 옮기는 것 도보통학이 가능한 집으로 알아보았고, 운 좋게 계약이 되었다. 이제 하루 두 번 긴장하며 학교 앞 주차 자리를 찾을 필요도 없고, 겨울에 언 유리창을 뜨거운 물로 녹이면서 동동거리지 않아도 되어 스트레스가 반 이상 줄었다. 그러나 절실하게 운전할 필요가 없어지니 그나마 조금 늘었던 운전 실력은 도루묵.      




  다시 돌아온 여름 방학. 한 달 보름이 되는 긴 시간 동안 다른 엄마들은 써머 캠프도 보내고, 놀이공원도 데려가는데 우리는 별 해당 사항이 없다. 한국에서 수영이나 축구, 태권도를 시키면 집 앞에서 셔틀버스를 태우고 끝나면 다시 데려다줬는데, 이 나라에서 그런 특급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어딜 좀 데리고 가볼까 싶어도 차로 20분 내 갈 수 있는 거리를 대중교통으로는 한 시간여를 갈아타고 가야 하니 그냥 포기하고 집에 있지 싶다. 종일 게임을 하며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아이들을 보면 답답함과 함께 한숨이 나온다. 차가 세워져 있는데 왜 쓰지를 못하니.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다시 운전할래?”라고 하면 고개를 젓게 된다. 한국과 영국에서 도합 52시간의 연수를 받았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운전. 운전을 못 해서 불편한 건 맞지만 어쩌면 그 사실 자체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방학 때 뭐 할까 묻는 나에게  “엄마, 우리는 그냥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게 좋아요.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는 안 가고 싶어요.”라고 답하는 아이들의 대답에 아차! 싶었다. 아이들이 정작 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 써머 캠프 때문에 내 속을 끓이고 있었다니.     



  영국 생활 3년 차,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맞는 여름방학. 주로 방학에는 집, 근처 공원에서 보냈지만 이번 방학은 좀 달라지고 싶다. 운전을 못 한다고 위축되어 집에만 갇혀있지 말고 기차를 타고 런던 시내에 간다든지,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 홀리데이 클럽을 보낸다든지, 아이 친구들을 초대해 플레이 데이트를 한다든지 말이다. 기동성 있는 엄마가 아니라 불편하고 느릴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약점도 부족함도 없이 완벽하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 ‘누구나 자기의 한계 안에서 사는 거지, 빈틈이 좀 있으면 어때’ 싶으니 스스로 너그러워진다. 오죽하면 “영어보다 운전”이라는 영국 생활이라지만, 운전은 서투른 대신에 영어는 할 수 있으니 내가 못하는 것에서 시선을 돌려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막힌 길 앞에서 한탄하는 것은 이제 그만. 인생의 우회로는 언제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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