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시에나 Jul 14. 2021

사랑은 오래 참고

십 대에 들어선 아이와 새로운 관계 맺기



  7월 첫 주 큰 아이가 2박 3일 캠핑을 다녀왔다. 영국 초등학교에서 4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일종의 수학여행이다. 설레어하는 아이와 달리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그것도 야외 텐트에서 잔다기에 걱정이 앞섰다. 날씨가 좋기를 간절히 기원했지만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영국 날씨. 캠핑 간 내내 비바람이 심하고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텐트에 비가 새지는 않을까, 추운 날씨에 행여 감기라도 걸려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두 밤을 마음 졸이다가 만난 아이. 원래 무뚝뚝한 편이라 “엄마!” 하고 달려오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나에게 화가 난 건가 싶을 정도로 짜증이 반쯤 섞인 녀석을 보니 당황스러웠다. 밤새 비가 많이 오던데 괜찮았는지, 누구랑 같은 텐트에서 잤는지, 음식은 맛있었는지, 뭐가 제일 재미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한 가득인데 뿌루퉁한 표정으로 ‘예’, ‘아니오’ 로만 대답하고 그마저도 그만 물어보란다. 다른 아이들이 마중 나온 엄마 아빠랑 사이좋게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부러운지.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온 녀석의 머리를 말려주다가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선율아, 너무 서운하다. 엄마가 너 얼마나 기다렸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나, 선율이 엄마로서 실패해버린 것은 아닐까?      


  “Sorry......"      


  울고 있는 내게 다가와 꼭 안아주는 아이. 그렇지만 이미 마음은 상해버린 뒤였다.






  금요일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둘째 선우 머리가 다 젖어있었다. 놀라서 살펴보니 아침에 쌀쌀할 때 입고 간 스쿨 점퍼를 아직도 입고 땀을 흘리고 있는 것.      


  “선우야, 엄마가 더우면 벗으라고 했잖아. 그걸 아직까지 입고 있니? 더우면 벗어야지, 그렇게 껴입고 땀을 흘리고 있으면 어떡해? 어휴, 너 몇 살인데 아직 그것도 몰라? 얼른 벗어.”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보자마자 폭풍 잔소리를 했다. 몇 마디 더 길어지자 가만히 듣고 있던 선우와 달리 선율이가 불쑥 꺼낸 말.     


  “Mummy, I don't want to hear that kind of conversation(엄마, 그런 얘기 안 듣고 싶어요).”   

  

  순간 머리가 띵 했다.      


  “뭐? 듣고 싶지 않다고? 야, 너 지금 뭐랬어?! 내가 선우에게 얘기하는데 네가 왜 끼어들어? 엄마가 그 정도 얘기도 못 하니? 듣기 싫다는 게 뭐야 지금?”      


    안색이 어두워지는 걸 보고도 그만할 생각이 없는 나.      


  “너 지금 영국 산다고 영국 사람인 줄 알아? 엄마가 이야기하면 듣기 싫어도 들어야지. 건방지게 그게 무슨 소리야?”      


  한번 솟은 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얘 때문에 요즘 너무 속상해. 방금 얘가 뭐라냐면...’ 남편에게 얘기하니 곧바로 전화가 왔다.      


  “선율이 바꿔. 김선율, 너 엄마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어? 너 집에 가서 봐.”  

   

  남편의 격앙된 반응에 덩달아 나도 움찔했다. 셋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은 뒤 큰아이 손톱을 깎아주며 물었다.      

 

 “선율아, 아까 왜 그렇게 말했어?”      


  몇 시간이 지나고 내 목소리가 좀 부드러워진 걸 느꼈나 보다.      

 

 “엄마, 나는 누가 화를 내거나 큰 소리가 나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기분이 나빠져요. 내가 혼나는 게 아니라 선우가 혼날 때도 같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엄마가 선우랑 다른 곳에 가서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아, 그런 거구나. 너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어릴 때부터 소리에 예민한 아이라 지금도 청소기만 돌리면 위층으로 도망가 버리고, 스테인리스 냄비를 쇠 젓가락으로 긁는 소리를 특히 못 견뎌한다. ‘엄마가 큰 소리를 내면 저는 불안해져요. 네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는데, 아직 표현이 서툴러서 듣기 싫다는 말이 먼저 나왔구나. 하긴 그걸 다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으면 다 큰 어른이지 아이겠어? 어른 중에도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자 내 마음도 스르르 풀어졌다.      


    대화의 물꼬가 트인 김에 하나 더 물었다.      


  “며칠 전에 너 학교 캠핑 다녀왔을 때 왜 화난 것처럼 뚱하니 있었어?  그만 물어보라고 한 건 왜 그랬어?”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요. 밤 10시 넘어 늦게 잤는데 동이 일찍 트고 새소리가 들려서 새벽 6시 전에 일어났거든요. 엄마가 좀 기다려주면 내가 얘기하고 싶을 때 얘기할 건데 만나자마자 질문을 막 던지니까 안 그래도 피곤한데 대답하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 가면 아이 말버릇을 고쳐주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차근히 설명해주니 그도 이해가 되는 모양이다. 집에 와서 무릎을 꿇고 아이를 안더니 사과를 했다.       


  “선율이 마음이 그런 거였구나. 아빠가 몰랐어. 미안해. 앞으로도 그렇게 얘기해줘.”      


    가정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당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정말 어려운 시기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대니 샤피로, 『가족의 역사』 (2003).
제니퍼 시니어, 『부모로 산다는 것』 (2014) 298쪽 재인용.         

  

  

  한국 나이로 10살, 며칠 전 생일이 지나 영국 나이로 9살이 된 큰 아이와 요즘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언제고 귀여운 품 안의 자식일 줄 알았는데, 그 무시무시하다는 사춘기는 아직 남의 이야기고, 몇 년 더 남은 것 같은데 벌써 뭔가 연결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몸만 커진 게 아니라 생각도 자라고, 독립적으로 자기 세계를 창조해가고 있는 너를 만난다. 너는 네 우주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작은 내 세상에 너를 품고 있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이제는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 가고 있는 너를 기다려줘야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벌써 주파수가 안 맞는데 사춘기가 되면 그땐 어쩌지?’ 하면서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때는 또 그때의 해결책이 생길 것이다.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분명한 건 자기 의견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와 새로운 관계 맺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이번에 대화를 나누며 새롭게 배우게 되는 몇 가지가 있었다.    

 

1) 아이를 기다려주고 존중할 것

2) 아이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

3) 감정을 가라앉히고 대화하면 이해가 된다는 것      



  성서에서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 불린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로 시작하는 명구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랑의 지침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어릴 땐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이라는 감정, 설렘, 두근거림을 먼저 떠올렸는데, 이제는 왜 ‘오래 참음’이 맨 먼저 나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생각과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인내하며 그 너머를 기다리는 것. 그게 ‘사랑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갑자기 쑥 커버린 듯 십 대의 문턱에 들어간 아이를 키우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 지점이다.      







이전 08화 나는 포기를 모르는 ‘반업맘’!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영국에서 보내는 마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