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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Oct 02. 2022

런던 지하철에서 아빠를 잃어버리다

빅토리아 라인을 탈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

 

  영국에서 두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 원래는 시아버님이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사는 사촌 동생이 한국에 가서 방 하나가 비는 김에 혼자 계시는 시아버님이 마음이 쓰였다. 농한기인 겨울이니 시간도 괜찮으실 것 같고.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대번 그때는 어려우시단다. 이유를 여쭤보니 이장선거가 있으시다고. 예상치 못한 답변에 웃음이 터졌지만, “네네, 이장선거 중요하죠. 그럼 다음에 오셔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디 여행이나 갈까 생각하던 차에 친정 부모님과 통화를 했는데 친정아버지가 두 번째 직장을 퇴직하신 뒤로 좀 허전해하신단다. 마음이 헛헛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셨다.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바깥세상은 요란해지는데 나이 드신 두 분만 덩그러니 집에 계시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남편과 의논한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랑 영국에 와서 몇 주 계시는 건 어때요?”

     

   멀리 거기까지 어떻게 가냐고, 괜찮다고 하시는 부모님께 다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인생에 기회라는 게 그렇게 자주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제 생각엔 이번에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런던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얼마나 예쁘다고요. 살면서 그런 걸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잖아요.”     


  나보다 오래 사신 부모님께 인생의 기회까지 들먹이는 게 오버스럽긴 했지만 뭔가 감이 왔다. Now or Never. 코로나 팬데믹, 다가올 재앙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큰딸의 진지한 설득에 넘어가신 부모님은 오시겠다는 확답을 보내왔고, 매달 모아 왔던 가족통장에서 비행깃값을 지원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두고 부모님이 오셨다. 엄마는 1년 전 우리가 영국에 올 때 초기 정착을 도와주시러 함께 오셔서 두 달 반을 머무르고 가셨는데 아빠는 영국이, 아니 유럽 여행이 처음이셨다. 영국의 겨울은 날씨가 궂기로 유명하고 오후 4시면 이미 깜깜해져서 관광하기에 적합한 계절은 아니지만 우리 아빠가 누군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열정이 넘치시는 분! 엄마와 내가 전기장판으로 데워진 이불속으로 파고들 때도 아빠는 매일 눈을 반짝거리며 동네 탐방을 하셨다.




  그런 호기심 천국 아빠를 모시고 모처럼 런던 투어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그린 파크 역에서 빅토리아 라인을 타러 갔다. 저기 문이 열리기에 “아빠, 빨리 오세요!” 외치고 달려가 냉큼 탔는데 잠시 뒤 문이 닫힌 것. 아빠도 얼른 뒤따라오셨지만 결국 타지 못했다. 나는 문 안쪽에 아빠는 문 바깥쪽에 멍한 얼굴로 마주 섰다. 곧 지하철은 출발했고, 당황한 나는 아빠를 보며 ‘바이 바이’ 손을 흔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기에 계시면 내가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손짓을 할 것 같은데 그땐 당황한 나머지 작별의 인사를 해 버린 것. 다음 역에 내리자마자 계단을 뛰어 올라가 반대편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다시 그린 파크 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실 거라고 생각했던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아... 아빠를 잃어버렸구나. 말 그대로 눈앞이 하얘지고 심장이 죄어왔다. 아빠를 어떻게 찾지? 길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할 텐데,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핸드폰을 꺼내 카톡 메시지를 보냈지만 역시 전송이 되지 않았다. 런던은 지하철 내부는 물론 역사에서도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다. 혹시 나를 따라 뒤에 오는 열차를 타고 다음 정거장에 내리셨을까 싶어 다음 역으로 가보았으나 거기에도 아빠는 없었다. 이대로 영영 못 찾으면 어떡하지?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나쁜 상상을 애써 지우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역무원실 문을 벌컥 열고 거의 울기 직전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빠를 잃어버렸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빠는 영어도 못 하시는데....”       


“걱정하지 말아요. 찾을 수 있어요. 자,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해봐요.”

      

  친절하지만 단호한 어조에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상황을 설명했다. 역무원들은 CCTV를 확인하고, 무전기로 한참 통화하더니 아빠가 두 정거장 떨어진 복스홀 역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극도의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입으로는 땡큐를 외치면서도 머리는 한국식으로 계속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와 복스홀 역으로 갔다.     


  “아빠!!!”      


  역무원실로 들어서니 과연 거기 아빠가 계셨다. 우리 딸, 많이 놀랐냐며 싱긋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이번엔 덜컥 화가 났다. “아빠, 저랑 헤어지면 거기 그대로 계셔야죠! 그래야 제가 다시 찾아가죠. 움직이시면 어떡해요? 영영 못 만나면 어쩔 뻔했어요!” 걱정했다는 말 대신 경상도 출신 K-장녀는 모든 걸 아빠 탓으로 돌리며 화부터 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빠는 집으로 가려면 복스홀 역에서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는 걸 기억하셨고, 내가 손을 흔들자 먼저 간다는 뜻인 줄 알고 혼자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막상 역에 도착하니 어디서 기차를 갈아타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는데 그런 중년의 동양 남자를 내버려 두지 않고 말을 건 역무원이 있었다. 손짓, 발짓에 이어 영-한 구글 번역기까지 돌리면서 이것저것 묻던 찰나에 무전기로 연락이 된 것. 다시 여러 번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가 “당신, 국제미아가 될 뻔했네.” 놀렸다. 그제야 좀 웃음이 났다. 그날 저녁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살이 났지만.       


  그 뒤로 푸른색의 빅토리아 라인을 탈 때면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막막하고 마침내 안도했던 그날의 기억도 함께. 다음에 그런 일 있으면 그 자리에 서 계셔야 한다고, 돌아다니면 더 못 찾는다고 뾰족하게 말하는 대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얼마나 놀라셨냐고, 제가 더 잘 챙겨야 했는데 죄송하다는 말이었는데 끝내 쑥스러워 하지 못했다. 경상도 + K-장녀가 어디 가나. 미처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고해성사하듯 여기에 적는다. 왠지 아빠는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지만.     


  부모님이 한국으로 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확산으로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돌아보니 그때가 해외여행이 가능한 마지막 기회였다. 부모님은 두고두고 그때 딸 말 듣기 잘했다고 얘기하셨다. 운전을 못 하는 딸 덕에 영국에 와서도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으셨지만 그래도 눈부시게 황홀한 런던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며 감탄하고, 다 같이 우스꽝스러운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쓰고 크리스마스 디너도 즐겼다. 역시 지금 오셔야 한다고 강권하길 잘했지. 이제는 안다. 살면서 이런 시간은 짧고 드물게 허락된다는 것을. 그런 순간이 흘러가는 일상에 책갈피가 되어 가끔 미소 짓게 해 준다는 것도. 그 해 크리스마스 풍경이 부모님 마음속에 오래 머물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 해 런던의 크리스마스 장식, 영롱하게 빛나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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