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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May 04. 2023

나의 ‘간직하고픈’ 단어들의 사전

북 리뷰: 핍 윌리엄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엘리출판사



여성학을 공부한다는 건 내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첫 학기에 한 교수님이 “남아선호사상이라는 단어는 아들 밝힘증으로 바꿔야 한다” 일갈하셨을 때의 해방감을 기억한다. 그렇지. 자유주의 사상, 민주주의 사상도 아니고 남아선호를 무슨 사상씩이나 붙이나. 아들 밝힘증, 병 맞네 뭐! 쨍한 얼음물을 마신 것처럼 머릿속까지 시원하고 통쾌했다.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는 또 어떤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서 구절을 살짝 비튼 이 멋진 문장은 단 하나의 진리, 경전, 로고스의 권위를 사뿐히 뛰어넘는 힘이 있다. 객관과 중립의 장막을 걷어내고 나면 여성들의 말과 글이, 삶과 투쟁이 중요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작지만 힘찬 목소리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컸다. 낡은 고정관념을 부수고 새로운 시선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법, 나 자신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귀하게 여기는 법을 여성학에서 배웠다.



반면, 엄마로 살아가는 건 내 안에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단어들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생각은 주워 담을 새도 없이 주르르 흘렀다. 치카치카가 양치질을, 까까가 과자를 대체한 사이 내 세계는 그만큼 좁아졌다. 구체적인 명사는 도통 기억이 안 나고 이거, 저거, 그거 지시대명사만 남았다. 허구한 날 책이나 보고 활자의 세계에 살던 내가 불어버린 젖과 똥 기저귀와 쪽잠의 세계로 이동, 아니 추락했다. 아이들이 예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자주 도망가고 싶었다. 잠시라도 벗어나 숨을 쉬고 싶었다. 아니, 왜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지? 너도 나처럼 당해보란 거였나? 선배 언니들을 원망하며 『엄마 됨을 후회함』 같은 책을 끼고 살았다. 인터넷 맘카페에는 온갖 육아 정보와 함께 고립감, 아우성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밖으로 흘러나오지는 않는 게 신기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나의 언어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과정이었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읽으며 에즈미의 하녀 리지의 말에 눈길이 갔다. “제가 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거나, 더러워지거나, 불에 타서 없어져요. 하루가 끝날 때면 제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가 하나도 안 남아요. (그렇지만) 제가 놓은 자수는 언제나 여기 있을 거예요. (63쪽)” 가사노동의 측면에서 보면 리지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다. 힘껏 밀어 올리고 나면 다시 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끝없이 반복되지만 쌓이지 않고 모조리 사라진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 내게 글쓰기는 ‘리지의 자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어오는 바람 앞에 놓인 민들레꽃처럼(같은 쪽)” 산산이 흩어지는 시간 속에 붙잡고 싶은 영속적인 것, 끝내 기억하고 싶은 어떤 것들의 기록.



새로운 언어에 가슴 뛰던 이십 대, 뿌리가 뽑힌 것 같이 흔들리던 삼십 대를 지나 사십 대의 나. 여전히 엄마라는 역할에 매여 있지만 ‘읽고 쓰는 사람’을 중요한 정체성으로 가져간다는 점이 달라졌다. 나는 기억하려고 쓰는 사람. 내가 사랑한 것들, 나를 흔들어 놓았던 것들, 지키고 싶은 내 목소리를 바람결에 흘려보내지 않고 리지의 자수처럼 활자로 꼭꼭 박아두고 싶다. 에즈미가 만든 『여성들의 단어』가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이었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사전은 ‘간직하고픈’ 단어들의 사전이다. 발견했으나 잃었고, 다시 찾았기에 더 귀중한 나의 단어들을 빼곡히 기록한 사전이라니. 생각만 해도 다시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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