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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May 10. 2023

육아의 기쁨과 슬픔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포이에마


올해 큰아이가 만 10세, 작은아이가 만 8세니 엄마가 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인생의 1/4을 엄마로 보냈구나, 뒤늦은 자각이 든다. 30대 초반 아이를 낳은 뒤 단 하루도 그 짐의 무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삶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엄마가 된 후 육아는 다른 어떤 것보다 나에게 첫손가락에 꼽히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육아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든 오랜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사랑하는데 왜 같이 있으면 힘들까?


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이토록 원할까?


엄마로 살면서 온전히 나일 수 있을까?



아이들을 키우며 자주 행복했다. 보드라운 살결에 입을 맞출 때, 품에 꼭 안고 있을 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 뒤뚱거리며 뛰어와 안길 때 더없이 충만했다. 내가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말을 할 때도(“엄마, 다람쥐묵 주세요.” 같은. 알고 보니 도토리묵이었다!) 아이의 모든 처음을 목도하는 일도 새로운 기쁨이었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새로운 무대에 첫 번째 열의 관객이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대체할 수 없는 종류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주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가 된 후 꿈과 계획이, 작은 욕구조차 번번이 좌절되거나 유예되었다. 아이들은 나의 시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으므로 내게 육아란 나를, 내 시간을 버리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인내심이 없는지, 태어난 지 몇 해 되지 않는 아이와 그렇게 바락바락 싸울 수 있는지 확인할 때마다 바닥을 마주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두 아이 엄마로서 나는 하늘로 솟는 행복감과 땅으로 꺼지는 괴로움을 동시에 맛보는 분열적 존재였다. 사랑하지만 힘들고, 소중하지만 도망가고 싶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분열을 지금도 매일 마주한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출판 포이에마 발매 2014.12.01.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23개국, 2,700명 이상이 속해있는 국제적인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의 리더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목사님이 쓰신 책이다. 어린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과정에서 가정과 부모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한지, 놀이에서 배울 점이 얼마나 많은지 웅변한다. 물질 만능 시대, 돌봄의 가치가 경시되는 사회를 향해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책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 중에 끝까지 남을 것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뿌리이고, 다른 하나는 날개다. - 헨리 워드 비처” 같은 귀한 문장도 얻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는 내내 뭔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읽는 동안은 이유를 잘 몰랐지만 다 읽고 나서 알았다. 이 책은 양육에 대해 한 가지 진실만을 다룬다는 것을. 아이들이 소중한 존재고, 유년 시절이 특권이고,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고, 놀이가 가치 있고...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도무지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공자님 말씀처럼 소위 ‘맞는 말 대잔치’인 것 같은 느낌이다. 프뢰벨의 교육 철학이 한국에서는 고가의 영아 교육 상품이 된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이 책에는 엄마가 된 후로 분열적 존재로 살고 있는 육아 당사자 ‘나’에 대한 이해가 없다. 자신을 주변적 위치에 놓아본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백인, 남성, 유자녀, 기혼, 목사의 저서이기 때문일까? 양육의 기쁨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 주시는데 실제 수행하는 존재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거나 지나치게 납작하다.



오늘날 ‘무자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념을 아무리 강요해도 여전히 아이를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좋은 일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21쪽)


육아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좋지 못한 태도다. 사실 이 세상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특권이다. (107쪽)



“아이를 갖는 일이 정상적이고 좋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도리어 이것이 왜 문제(problem)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살던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task)가 닥쳤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 대개 부부 사이에 심각한 감정적 위기를 겪는다고 한다. 주변에서 사이좋기로 손꼽히는 우리 부부도 그 시기에 자주 치열하게 싸웠다. 육아는 네가 안 하면 내가 힘들고, 내가 안 하면 네가 힘든, 그러나 절대 미룰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의 일상이란 전쟁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는 ‘저출생·고령화’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 앞에 서 있다. 특권이라고만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며, 특권임을 얘기하기에 앞서서 이것이 문제임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육아를 오직 문제로만 머물러 있게 둘 수 없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순수한 기쁨과 성장과 가르침을 주는 특권이기도 하니까. 부모의 책임으로, 특히 엄마의 몫으로 편중된 돌봄의 짐을 고루 나눠질 때 돌봄의 기쁨 또한 고루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만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육아의 기쁨과 슬픔을 고루 받아들인다. 아무리 사랑해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에 대해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사회의 몫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엄마로 살면서도 나 자신이 되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고 매일 다짐한다. 여전히 방학에는 한숨을 쉬고, 개학에는 환호성을 지르는 나,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 뺨에 얼굴을 비비고 나서도 금방 소리를 질러대는 나, 하루에도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현실 엄마인 내가 이 책에 반만 동의하는 이유다.




* 이 글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기자단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https://blog.naver.com/noworry21/22309682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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