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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Feb 02. 2024

너와 발 맞춰 걷는 길엔

일단 “산책 가자!”는 말은 금물


산책 가기 전


우리 집에서는 금기어가 하나 있다. 바로 "마루야, 산책 가자, 산책!" 이란 말. 다른 집 강아지들에겐 도파민 팡팡 터지는 말일 텐데 마루는 다르다. 산책이란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재빠르게 도망가서 안방 침대 밑으로 쏙 기어 들어가는 너. 그러곤 아무리 좋아하는 간식을 갖다 대도 꿈쩍 않고 버틴다. 처음엔 어떻게든 나오게 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그냥 포기하고 내버려 둔다. 관심을 두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기어 나온다는 걸 이젠 알지.


그렇다고 마루가 산책을 싫어하는 강아지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막상 산책을 가면 얼마나 신나게 걷는지. 알고 보니 산책 전 옷을 입히고, 목줄을 차는 과정이 싫었던 것. 이제는 요령이 생겨 아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기습적으로(!) 옷을 입힌다. 그러고 나서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그럼 현관문 앞에서 얼른 나가자고 보채는 두 얼굴의 너. (귀여워)


“산책 가자!” 하면 침대 아래로 쏙 숨어버리는 마루


강아지 산책은 강아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이상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과다. 일차적으로는 강아지의 비만을 예방하고, 다리 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소화를 돕는 건강상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산책이 강아지의 기분 전환과 감정 관리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거다. 코로 세상을 만나는 강아지는 킁킁 다양한 냄새를 맡으면서 호기심을 충족하고 집 안에 갇혀있던 스트레스를 푼단다. 산책은 가족 외 다른 사람이나 강아지를 만나는 등 사회성 발달에도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2020년부터 하루 산책 2번 의무화, 일명 '산책법'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강아지 기본권, 혹은 행복추구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행히(?) 치와와는 산책을 많이 안 시켜도 되는 견종이라 크게 부담이 없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은 하루 30분씩 짧게 2번 나가면 가장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현실적으로 30분-1시간 이내로 하루 1번 정도 하게 되는 것 같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너무 춥거나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 빼고는 매일 산책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산책을 나설 때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갈 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있다. 지금도 초보 반려인이지만 정말 쌩초보일 때 일이다. 여느 날처럼 마루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어떤 주민 분이 "강아지 안고 타세요. 원래 안고 타는 거잖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말씀하셔서 놀랐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처음이라 원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서둘러 알겠다고 하고 안고 탔다.


다음 날 동물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생각보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본인은 대형견 두 마리를 키우는데 엘리베이터에 타지 말라고 한 사람도 있었단다. 그리고 덧붙이시는 말 "그런데 안전 때문에라도 안고 타시는 게 좋아요. 강아지 목줄이 엘리베이터 문에 끼여서 사고나는 경우도 있거든요." 헉.... 그런 건 생각지 못했는데. 알겠다고 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그 일이 일어날 줄이야!   


바쁜 나를 대신해서 남편이 마루 산책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강아지 목줄을 잡은 남편이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아직 마루가 타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버렸다. 당황한 남편은 문 열림 버튼을 누른다는 게 실수로 1층을 눌러버렸고... 숨이 넘어갈 듯 컥컥 대는 마루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천만다행으로 목줄이 탁 하고 끊어졌다! ㅠㅠㅠㅠㅠ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숨도 못 쉬고 가만히 마루를 안고 있는데(지금 쓰면서도 손이 덜덜 떨린다) 사색이 되어 다시 돌아온 남편... 3화에 쓴 초콜릿 사건과 함께 또 한 번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그 이후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꼭꼭 안고 탄다. 실제로 엘리베이터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하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일!


아빠에게 안겨 엘리베이터 타는 마루


산책을 나가면


마루와 매일 산책 나가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된 요즘, 느끼는 소소한 변화가 있다. 먼저 날씨와 계절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예전엔 빨래할 수 있는 날씨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다면 요즘엔 마루와 산책 나갈 수 있는 날씨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겨울엔 영하 4도 이상 떨어지면 소형견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온도 체크는 필수. 마루가 우리에게 온 지난가을, 녀석의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마루 덕분에 나와 바람도 쐬고 지는 해도 볼 때면 마음속에 고요한 기쁨이 차올랐다.                 


혼자 걸을 때는 익명의 타인이 되지만 강아지와 함께 걸으면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도 내겐 새로운 변화다. "꺅, 귀여워!" 하는 집 근처 중학교 학생들의 탄성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고(역시 내 강아지!), 무뚝뚝해 뵈는 청년이 보내주는 미소에 나도 따라 웃기도 한다. "얘, 몇 살이에요? 만져봐도 돼요?"라고 공원 내 어린이집 아이들(과 엄마들)이 다가오는 일도 잦다. 마루는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라 대부분 만져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산책하면서 동네에 이름을 아는 강아지들도 몇 생겼다. 우리 동네가 새롭게 다정해진 느낌. 아이들 어릴 때 느꼈던, 큰 다음엔 잊고 있었던 온기를 마루를 통해서 다시 느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 피는 봄이 오면 마루와 함께 하는 산책은 또 어떤 빛깔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숨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푹푹 찌는 여름엔 또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모르는 게 많은 초보 반려인은 너와 보내는 사계절이 다 궁금하다. 치와와는 다리가 약한 견종이라 노견이 되면 개모차가 필수라던데... 먼 훗날, 마루를 생각하면 짧은 다리로 꼬리를 흔들면서 타박타박 걷는 소리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 귀찮다고 바쁘다고 미루지 않을 테니 그저 오래오래 건강히 걸어줬으면.                


경쾌한 너의 발걸음에 맞춰 오늘도 집을 나선다. 자, 가자, 마루!



강아지 낙엽 밟는 소리 AS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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