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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an 26. 2024

사춘기 아이의 방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강아지를 키우는데 좋은 시기가 따로 있을까만은


10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니 큰 아이가 달라졌다. 마냥 보드라운 둘째와 달리 원래도 까칠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지만, 까칠함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했다고 해야 하나? 별 뜻 없이 한 질문에 벌컥 화를 내거나, 엄마아빠는 아무것도 이해 못 한다는 듯 표정이 굳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어느 날은 작정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아니, 매사에 그렇게 화가 나?"


그렇다. 춘기 춘기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원래 발달이 좀 느리다고 하니 적어도 1-2년은 남았다고 생각했건만 아닌가 보다. 이제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는 아이와 그걸 지켜보는 나. 벌써 이렇게 부딪치는데 앞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 자식이 아니라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그나마 견딜만하다는 선배 엄마들의 충고를 되새기며 낮버밤반(낮에는 버럭하고 밤에는 반성하는)을 반복하던 어느 날,


마루가 우리에게 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프롤로그에서)


https://brunch.co.kr/@tosiena/67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던 내가 과연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교회 사모님이 하신 말씀이 귀에 딱 꽂혔다. "강아지와 함께 살아보는 건 평생에 꼭 한번 해봐야 할 귀한 경험이에요. 특히 사춘기 아이들의 정서에 정말 좋아요. 지금이 딱 좋은 시기인 것 같은데요?" 마루와 함께 산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이 말씀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강아지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 가족의 심리적인 변화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고새 털이 좀 자란 강(아지) 마루


1. 화가 덜 난다


마루와 함께 살면서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에게 화가 덜 난다(!)는 점이다. 일단 초보 반려인으로서 낯설고 새로운 존재 마루에게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아이들의 사소한 짜증과 불평은 크게 신경이 안 쓰였다. 내가 덜 예민하게 바뀌니 아이들 좀 더 편안해진 듯했다. 좀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털북숭이 마루를 쓰다듬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감이 들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오직 현재에 머물게 하는 마법! 큰 아이도 마찬가지. 소파에서 아이가 책을 읽으면 마루가 가만히 몸을 밀착하며 엎드리고, 아이가 쓰다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면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감소하는 등 실제로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결과를 자주 접하는데, 우리 집 임상결과를 봐도 마루가 확실히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데 큰 기여를 하는 것 같다.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847622


2. 집안일에 참여하게 된다


강아지를 키우면 소소하게 할 일이 늘어난다. 작게는 매일 산책을 시키고(산책 후 발 닦는 것까지 포함), 배변을 치우고, 사료와 물을 채워주는 일, 간식과 영양제를 챙겨주고, 양치질을 시키는 것, 크게는 목욕을 시키고 병원에 데려가는 것 등등 사소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일들이다. 주로 내가 많이 하지만 행복한 반려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엄마, 마루 이거 하는데 좀 도와줄래?"라고 외치면 달려오는 아이들. 확실히 예전보다 가사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요즘 선형제는 밥을 먹고 나면 식탁을 행주로 훔쳐주고, 빨래 너는 걸 도와주고, 강아지와 터그놀이를 해주고, 산책도 함께 다녀온다. 큰 아이는 올해 여름방학부터 마루 배변을 치워주기로 약속했다. (부러 써둔다. 지킬 거지, 아들?) 일본 사회학자 우치다 타츠루가 쓴 <하류지향>이라는 책을 보면 아이들을 가사노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최초의 사회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유용한 구성원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는 것은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부터이다. 작지만 가족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감사와 인정을 보상으로 획득하면서 어리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간다. (우치다 타츠루, 하류지향, 49-50쪽)"


아이들이 소비주체로 자신을 정체화하기 전에 가정에서 노동주체로 사회적 인정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말씀이다. 읽으면서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마루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고사리 손이라도 빌리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에 마루의 입양이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3. 가족 간의 유대가 깊어진다


작년 가을부터 자기 방이 생긴 형제들은 이제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이러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틀어박히는 날이 오겠지...' 싶을 때 슬며시 믿는 구석이 있다. 주위 반려견을 키우는 분들과 얘기하면 "사춘기 아이 방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강아지다. 강아지가 있어서 아이들이 거실로 나온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우리도 마루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대화 주제도 더 다양해지고, 나눌 얘기도 많아졌다. 아이들이 마루를 막냇동생처럼 여기고 귀여워해주는 모습을 보면 같이 살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아지를 키우는데 좋은 시기라는 게 따로 있을까 싶지만 우리에게 마루는 정말 딱 좋은 시기에 온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외부의 도움 없이 남편과 나 둘이서 육아를 감당하느라 늘 지쳐서 식구를 더 늘리는 건 감히 생각도 못 했더랬다. 아이들이 좀 크고 손이 덜 가는 지금, 그러나 귀여움은 점점 사라져 가고 몸과 마음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져 가는 시점에 마루가 우리에게 왔다. 이 녀석 때문에 신경 쓰는 일도 많이 생겼지만 기쁨과 행복이 더 커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준 고마운 마루가 우리 곁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머물러줬으면 좋겠다.



귀한 우리 집 삼형제, 건강하고 우애있게 자라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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