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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an 19. 2024

우리 집 강아지와 공유하지 않는 한 가지

인간과 반려동물 모두 푹 잘 수 있는 방법 찾기


1. 우리 오늘 잘 수 있을까


마루가 우리 집에 온 첫날밤, 강아지가 무서웠던 나는 일찌감치 잘 준비를 마치고 안방에 들어와 있었다. 뒷 일은 남편에게 맡긴 채.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는 경력자 남편은(든든) 거실에 있는 강아지 침대에 마루를 눕히고 토닥인 다음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왔다. 조용하다. 괜찮겠지...? 괜찮은가 봐...! 부부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타박타박

벅벅벅 벅벅벅


잠시 후 조용한 집에 울리는 방문을 긁는 소리. 마... 마루다. 어쩌지? 얼음이 된 남편과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교환한 뒤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반응이 없으면 가서 자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잠시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벅벅벅에 이어 낑낑낑이 추가되었기 때문.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갑자기 바뀐 환경이 얼마나 낯설까 약해진 마음에 문을 열어주었다. 신나서 뛰어들어오는 강아지 녀석, 귀엽긴 하지만 한숨이 폭 나왔다. 다시 남편이 마루를 안고 거실로 나갔다. 문을 닫고 들어오자 다시 타박타박 - 벅벅벅의 반복... 우리 오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2. 강아지와 분리수면을 택한 이유


강아지와 함께 자는 편이 좋다, 분리해서 자는 편이 좋다 말도 많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분리수면을 택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주로 부부 사이에 강아지가 잔다고 했다. 오 노... 아이들의 잠자리 독립이 10년 육아인생 중에 가장 잘한 일인데, 강아지랑 같이 잔다고? 커피 한 잔 마셔도 밤을 새우곤 하는 나, 남편 외에는(아이들 포함) 다른 사람과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예민한 나로서는 애초부터 강아지와 한 침대를 공유하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외출복으로는 침대에 올라가지 않는 깔끔쟁이 나는 매일 산책하지만 목욕은 2-3주에 한 번씩 하는 강아지랑 함께 자는 건 위생상 좋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맨날 얼굴은 왜 부비는데...? ^^;;)


첫날은 자는 둥 마는 둥 밤잠을 설쳤지만 고맙게도 마루는 다음 날부터 자기 잠자리에서 쌔근쌔근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런 놀라운 적응력이라니! 가끔 우리 방에 찾아오는 날도 있었지만 안고 거실 자기 침대에 데려다주면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함께 산지 세 달이 지난 지금은 저녁 시간부터 침대에 착 누워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피곤할 때 건드리면 으르렁 거리기도 한다. (인간들아, 잠 좀 자자!) 자기 침대를 애정하고 밤에 잠을 잘 자는 마루 덕분에 밤잠에 예민한 나는 아직까지 큰 지장 없이 지내고 있다.


마루 코고는 소리 asmr


3. 강아지 수면권 보장


1) 올빼미 성향 버리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 남편과 달리 나는 올빼미 성향이다. 내가 그간 쓴 글의 대부분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거실에서 쓰였다. 낮엔 아이들과 함께 씨름하느라 눈에 보이는 집안일 하느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마루가 오고 나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마루는 마루 차지가 되어버렸기에. 처음엔 첫날의 타박타박 - 벅벅벅이 반복될까 봐 밤에 거실 화장실을 쓰거나 물을 마시러 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지금은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늦은 밤 작업을 하게 될 때, 가끔 고개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보는 널 보게 되면 단잠을 깨우는 것 같아 그리 미안할 수가 없다. 혹자는 뭘 그리 개 눈치를 보면서 사느냐 하겠지만 원래 사랑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것 아닐까? 자연히 깨어있는 낮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밤엔 늦지 않게 잠을 자려고 노력 중이다. 만성피로의 원인이 늦은 취침과 수면 부족임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했던 나쁜 습관을 강아지 덕에 바뀌었다. 잠을 잘 자면 노화도 더디오고 건강 수명도 연장된다는데 생명 연장의 꿈을 강아지가 이뤄주다니!


2) 새벽 배송 중단


마루가 거실에서 자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벽 배송을 시킬 수가 없게 되었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에 택배 아저씨가 다녀가시는 소리가 나면 마루가 깰 테고, 놀라서 짖으면 다른 이웃들에게도 피해를 끼치게 되니까. 장은 직접 낮 시간을 이용해서 보고, 온라인 배송업체를 이용하더라도 낮에 일찍 주문해서 저녁 10시 전에 배송되도록 받는다. 영국에 살다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건 쿠X, 마켓XX 등 새벽배송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밤 11시 이전에 주문하면 이른 아침에 집 앞에 와 있는 편리한 시스템은 배송 기사님들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한다.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의 수면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누군가는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누구나 공평하게 수면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는 나는 너무 나이브할까.  


3) 야식 금지


원래도 야식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저녁을 건너뛰거나 가볍게 먹은 뒤 남편과 아이들 몰래 비빔면을 끓여 먹거나 부침개에 막걸리 한두 잔을 기울이던 날들은 추억이 되었다. 식탐이 많은 우리 강아지의 눈과 코를 피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 일 년에 몇 번 야식의 즐거움은 사라졌지만, 그만큼 건강한 생활이 우리 앞에 도래했다고 믿는다. 100%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괜찮다. 네가 편히 잘 수 있다면,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야식 따위...... ㅠㅠ 


4. 정답은 없다


강형욱 훈련사는 강아지와 유대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함께 자는 것을 꼽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미적거리면 우리 침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점프하고 낑낑대는 마루를 보면 '그냥 올려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몇 년 뒤의 나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아플 때가 아니면 낮잠을 자는 일이 없던 내가 요즘은 소파에서 털북숭이 마루를 껴안고 있다가 어느새 스르르 잠에 빠지기도 하니까. 강아지와 함께 자는 행복도 있지만 각자 편하게 자는 자유로움도 있으니 각자 환경과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될 것 같다. 아직까지 내 선택은 낮에 더 많이 온기를 나누고 밤엔 편히 따로 자는 걸로. 이것이 지금 내가 찾은 강아지와 인간의 수면권을 모두 보장하는 방법이다. 잘 자줘서 고마운 우리 마루, 오늘도 꿀잠 자자! 


이불에 폭 싸여 자길 기다리는 마루 (지금 내 폰 바탕 화면!)


시가에서 꿀잠자는 마루, 개편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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