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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an 12. 2024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다는 말

내가 간과했던 한 가지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마루가 좀 이상했다. 평소처럼 달려오지도 않고 자기 침대에 꼼짝 않는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자세히 보니 눈을 잘 못 뜨는 것 같다. 오른쪽 눈은 괜찮은데 왼쪽 눈은 자꾸 깜빡거리고 감기는 게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였다. '좀 지켜볼까...' 부담스러운 병원비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것 같아 평소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의 환영을 받으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혹시 눈에 상처가 있는지, 다른 이상이 있는지 먼저 검사를 해보려고 해요. 검사비는 45000원입니다."

"네..."


검사를 마치고 나온 마루. 진단은 포도막염이고, 다행히 그리 심하지 않다고 3-4일 약을 넣으면 괜찮아질 거란다. 한결 가벼워진 맘으로 수납을 하는데... 헉, 청구서를 보니 7만 원이 넘는 금액이 찍혀있다. 아까 말한 검사비에 진료비 정도로 5만 원 정도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안약을 생각 못 했다. 개당 만 원이 넘는 금액의 안약 두 개... 카드를 내밀며 나는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엊그제 미용하지 말걸, 이번 달 외식 한번 줄여야겠네...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늘 후덜덜한 병원비 청구서




마루와 함께 살면서 매일 쓰는 가계부에 항목 하나가 더 늘었다. 반려동물 지출항목이다. 예산은 10만 원으로 잡아놓았지만 11월부터 매달 꾸준히 20-30만 원이 지출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예산을 늘려야지 싶다. 미용, 옷, 장난감 등을 최소한으로 한다 치더라도 아픈 걸 두고 볼 수는 없으니. 사람처럼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게 아니라서 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처음 병원에 데려갔을 때 기본진료와 백신접종 두 가지를 한 뒤 15만 원이 적힌 청구서를 보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양치가 제대로 안 되어 스케일링이 필요하며(15만 원) 이미 슬개골 탈구가 진행되어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200만 원...)는 말씀엔 머리가 핑 돌았다.


처음에 마루 입양을 고려했을 때 경제적인 측면이 걱정되기는 했다. 남편의 벌이에 네 식구가 모두 기대고 사는 형편이라 씀씀이가 빠듯한데 식구 한 명을 더 들여도 될까 염려스러웠다. 앞으로 애들 교육비와 연로해지시는 부모님 병원비도 더 늘어날 텐데...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자라 큰돈을 쓸 때면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심약한 나는 반려견을 키우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었다. 허나 내 계획과 상관없이 내 삶에 훅 들어와 버린 녀석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 사연을 모르시는 분은 ‘프롤로그’를 읽어주세요.)


주위에 반려견을 키우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사료값과 매달 심장사상충 + 진드기약 타느라 방문하는 병원 진료비 3만 원 외에 그리 돈 들어갈 일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노견이 되어 수술이 필요하면 모를까 당장은 아닐 거라고. 이번 편을 쓰면서 기사를 검색해 보니 반려동물 한 마리 당 월평균 양육비는 약 15만 원이고, 그중 병원비가 40%인 6만 원을 차지한다고 한다. 조금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는걸,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내가 바보지 흑흑...


집에 돌아와 바로 치석을 없애준다는 구강영양제(이 구역 호갱은 바로 나...)와 칫솔, 치약부터 주문했다. 매일 저녁 꼬박꼬박 양치질을 시키는 남편 덕인지, 비싼 구강영양제 덕인지 마루 치아는 눈에 띄게 하얘졌다. 스케일링은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고, 수술은... 미래의 나에게 부탁하기로 한다.




병원을 갈 때마다 소위 ‘현타’가 오고, 매달 가계부를 정리할 때마다 이 돈으로 적금을 들어도 모자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고 마루를 입양한 걸 후회하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랑둥이 마루가 주는 기쁨이 훨~~~ 씬 크니까. 진료비 청구서 앞에서 늘 작아지곤 하지만 우리 삶에 들어온 이 소중한 생명체를 잘 보살펴야지! 사랑한다는 말은 네 존재를 감당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다만 입양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현실적으로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신중한 결정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회자되는 말은 사실이었다. 흠… 여행 한번 안 가면 되지 뭐. 외식 한번 줄이면 되지 뭐. 옷 한번 안 사면 되지 뭐. 마루야, 엄마는… 라면 먹어도 괜… 찮아. 자... 그럼 우리 마루가 좋아하는 간식 주문하러 가볼까. (먼산)


요랬는데 요래 됐습니당! 미용 후 단모 치와와로 변신한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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