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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골프장엔 그늘집이 없다

골프로 살깍기 3

by 보르도대감

안 걷다가 18홀을 힘들게 걸었더니 아침에 몸뚱이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어깨는 '내버려두어 좀 더 자게', 허리는'네가 뜨끔한 맛을 봐야 정신 차릴래?' 그리고 종아리는 '경찰도 당비 당비로 일해, 나도 쉬게좀 눻둬' 하듯 온 삭신이 쑤신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가자. 골프회원권 사놓은 돈도 아깝고 이렇게 코로나 때문에 쉴 때 골프 안치면 언제 칠래 하는 생각에 꾸역꾸역 이불을 걷어차고 나왔다. 그만큼 살도 쪘었고 그로 인한 건강 문제가 발생할 것 같아서 라운딩 하며 당 보충용 바나나 두 개를 갖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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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식량도 준비가 됐겠다. 이제 많이 걸으면서 온 몸에 있는 지방을 쥐어짜면서 걸어야겠다는 각오로 필드로 향했다. 뛰는 게 걷는 거보다야 살이 더 빨리 빠지겠지만, 골프를 뛰면서 칠 수는 없으니 최대한 많이 걷고 그러면서 골프 실력도 좋아진다면 이것은 코로나가 나에게 준 기회일 수 있겠다는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이른 새벽에 떠오는 해돋이는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광경을 핑크로 물들게 했다. 아침 공기의 신선함은 숨을 쉴 때마다 수채화 한 장씩 내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가볍고 청량했다. 주변은 조용하고,,, 이런 맛에 골프 치는 거지..ㅎㅎ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2번 홀로 들어서기 전에 어디선가 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음~역시, 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이 있군. 밀리지 않고 앞으로 잘 빠져나갔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고 3번 홀에 들어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난 속으로 '또 잡혔군' 하는 탄식은 마음속에 숨기고 얼굴은 웃으면서 '일찍 나오셨네요'라고 감정관리를 양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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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호세. 그런데 꽤나 골프장을 다닌 분 같다. 실력이 하이 싱글 정도는 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며 들은 소리지만 젊었을 때는 이 골프장 주체 챔피언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아주 친철하고 재미있는 분이다. 라운딩을 하면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시간 쪼개기를 했다.


이곳 프랑스 보르도 사람들은 정말로 와인을 좋아한다. 점심 먹으면서도 한 잔, 저녁에도 한 잔, 밥을 안 먹어도 한잔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호세 할아버지는 와인을 한 모금도 안 마신다. 와인뿐만 아니라, 어떤 알코올도 마셔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젊었을 때 프랑스 공군이었고 제대하고서는 에어프랑스 파일럿 그리고 운동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축구, 싸이클링, 테니스,,,,모든 운동을 좋아하는 스포츠 마니아였단다. 그런데 회사를 퇴직하고 집에서 6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살이 찌고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검사를 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사 결과가 암이라는 것이다.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온몸에는 튜브를 꼽고 있었단다. 그래서 속으로 본인은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고 건강하게 일하고 운동 열심히 했는데,,,,어떻게 내가 암?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더욱더 활기차기 생활하고 스트레스 안 받고 욕 심다 버리고,,,,이러면서 병이 나아져서 이젠 다시 건강을 어느 정도는 되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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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다. 나에게 잠시만이라는 간단 외침과 함께 숲으로 사라지셨다가 나오신다. 아직 완치가 된 것이 아니라서 급할 때는 이렇게 볼 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대부분의 프랑스 골프장은 그늘집이 없다. ㅎ

이렇게 오늘은 호세 할아버지와 라운딩을 마무리했다. 이번 주 이렇게 계속해서 걸으면 몸무게가 얼마나 빠질래나? 중간중간 몸무게를 재면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으니 1주일 단위로 체중계 위로 올라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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