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질 듯 무너질 듯 기어이 버티고 있는 회사는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이사를 결정했다. 근속기간 동안 벌써 6번의 본사 이전.
집 없는 설움은 그다지 겪어보지 못했지만 사옥이 없는 설움은 아주 제대로 겪어보았던 것이다. 매해 갱신년이 될 때면 또 어디로 이사 간데? 지역은 어디래? 또 가는 거야? 같은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던 나의 회사.
서울 주요 도시에서 경기도로 갔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도 하고 강남에서도 두어 번의 이전이 있었고 또 오늘에 이르렀다. 잊을만하면 회사 이전 소식을 알리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당신 회사는 전쟁이 나도 살아남겠어. 이사만 대체 몇 번이야. 직원들이 짐 싸는 데는 도가 텄겠다"
진심 반 농담 반으로 한 소리였겠지만 자꾸 이사를 다니는 것이 내 탓인 듯 얼굴이 붉어졌다. 사옥이 없는 게 내 탓은 아닌데.라고 변명 같은 말들이 입안에 맴돌았다.
어제는 강남 사무실을 떠나는 기념으로 마지막 커피를 샀다. 자주 가는 매장으로 등록해두었던 곳과 나름의 작별인사였다. 고층 빌딩의 창가 자리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였다. 이전하는 사무실은 지하에 있는 곳이라서 창문이 없다고 한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그나마 창가 자리를 사수한 덕에 숨통을 트일 수 있었는데 이제 지하 사무실에서 벽과 친해져야 한다.
그곳도 그곳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 라고 위로하면서.
2020년은 그야말로 겪어보지 못한 시간들이었다.
전 세계가 중국이 퍼트린 코로나 19라는 역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고 오랜 기간 다닌 회사는 약속했던 때에 임금이 나오지 않았다. 구조조정이 단행되었고 300명이 넘던 임직원은 1/3로 줄었다. 불안과 고민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불면증이 생겼고 스트레스성 폭식이 돌아왔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라지만 쉴 틈 없이 주먹이 얼굴로 날아오는 기분이었다. 매일이 그러했다.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강남 사무실에서 이삿짐을 싼다. 그리고 20년의 마지막 주는 새로운 사무실에서 업무가 재개된다. 6번의 이사를 끝으로 더 이상의 이전은 없기를 바래보지만 어디 회사일이 내 맘대로 되던가. 그저 위기에 잘 웅크리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다시 떨쳐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