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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an 21. 2021

이렇게까지 잔인해도 되는 것인가

정리해고 통보를 하고 승진 발표를 했다.

 

 강남을 떠나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글에서 나는 이 작은 회사의 안녕을 바랐다. 내 젊음을 보 이 곳이 잘 견뎌주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정말이다.

급여가 밀려도 이사를 가도 말도 안 되는 업무가 내려와도 내 마음 저 밑에서는 애정이 근간이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새해 들어 이 애정의 근간은 모 깨졌다. 상투적인 말로 산산조각 났다. 다시 쌓아 올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상태.


이제 겨우 안정되나 싶어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게 나의 실수였다. 이사 후 재택근무도 가능하게 되었고 출퇴근 거리도 가까워져 조금은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회사 운영을 하는 부서와 사무실이 달라져서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였을까.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고 재택근무도 겪어보니 너무 좋다 싶었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내 적성인 것처럼. 그렇게 마음을 놓은 상태에서 또다시 전해진 소식은 우리 팀에서 또 사람을 줄이라는.


이번에도 모두 결정해서 통보를 했다. 제일 일을 많이 하고 있는 책임감 있는 직원을 당장 내보내라는 소식이었다. 권고사직의 이유는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 즉. 지금 있는 그 직원은 비싸니 조금 싼 노동력으로 교체하라는 소리를 아주 근사한 말로 포장해서 전달해왔다. 설마 더 자르겠나  싶은 순간. 허를 찔렸다.

 본부장들이 퇴사한 후. 팀장 자리에 앉은 사람은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할 생각이 없는 사람 같았다.

비싼 급여가 부담스럽다면 우리가 급여를 줄여서 같이 가겠다는 의견을 전달해달라 했더니  본인은 그걸 관철시킬 자신도 의지도 없다는 의견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내뱉었다.


 그들이 결정했던 대로 권고사직은 통보되었고 함께 일하던 그  직원은 이사오자마자 또 짐을 싼다. 그런데 그녀에게 사직을 통보한 날.

조직개편에 대한 공지가 올라왔고 심지어 승진자에 대한 공지도 함께 되었다. 한쪽은 권고사직이었고 한쪽은 승진과 승급이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싶은 생각. 정말 회사가 어렵다면 급여를 함께 줄이고 지금까지 버텨준 직원들과 함께 가야 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회사가 어려워서 미안하다며 본인은 임직원만 생각한다는 대표의 글에 내가 홀라당 넘어간 거다. 그들은 결국 숫자놀음으로 이리저리 끼어 맞추면서 회사를 팔기 좋게 만드는 것뿐이었는데.

 인건비를 줄여야 해서 사람을 내보낸다면서 왜 승진을 시키고  승급자를 만들고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추가 채용을 하는 부서도 있다는 거다.

 우리 팀의 고연봉자(이렇게 말하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의 연봉이지만)는 저렴한 인건비를 지불할 수 있는 신입으로 교체하라면서 왜 다른 곳에서는 채용이 되는 것인가.


 이렇게 까지 잔인해도 되는 것인가?

 이 회사는 최소한의 의리도 기준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본인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빨리 팔아버리려는 것인지. 이제 정말 모든 정이 뚝!!! 떨어졌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져서 그냥 확 다 망해버려라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동안 사회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일련의  사건들을 겪어보니 그동안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싶더라. 사회는 언제든 차가워질 수 있고 잔인해질 수 있다. 일개 직원에게 의리 따위는 지키지 않는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라는 진리를 다시금 체득하게 해 준 사건들.


너무나 지긋지긋하다.

지겨운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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