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 친구는 왜 너의 이야기는 안 하니 기쁨도 같이 나누고 슬픔도 같이 나누어야 더욱 돈독해진다 라고 나의 이야기를 종용했다.
그 친구의 힘듦을 잘 들어주었으나 나의 일에 대해서는 어쩐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섣부른 참견과 조언이 오히려 해가 될 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그 사람의 성향을 잊고 나의 괴로움을 근래에 조금 털어놓았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큰 파도를 넘는 중이고 이 시련과 상실감을 극복하려고 무던히 노력 중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 상황을 살필 여력 따위는 없다. 내 마음이 괴로워 나도 모르게 털어놨던 그 순간들.
그렇게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던 그 친구는 요 며칠 내가 한 이야기를 듣고. 언제까지 내가 너의 징징거림을 들어야 하냐고 반문을 해왔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다던 그 친구는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었다. 허울만 있는 친구 관계를 원했던 것일 수도 본인의 감정을 쏟아낼 사람이 필요해서 날 선택한 것일 수도 있는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섣부르게 쏟아낸 나의 괴로움들은 징징거림이 되어 있었다.
대가를 바라고 이야기를 들어준 적은 없지만 그 친구가 힘들 때 들어주던 그 시간. 내 감정들이 생각났다. 진심을 다해 위로하고 공감해 준 나의 감정들을 쉽게 잊고 나의 이야기를 징징거림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사람.
말 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잘못이었다.
나의 이야기는 나만이 제일 아프고 슬프다.
누구도 공감할 수 없고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다.
알고 있지만 네 문제는 네가 극복해야지 라는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 징징거리라는 소리 역시.
어른이 되면 관계를 맺는 것도 성숙하게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택도 없는 소리.
내가 마음을 준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마음을 내어줄 거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면 안 되는 건데 순간 내가 깜빡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 역시 타인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자신의 삶에 대입해서 나의 고통을 지푸라기만 한 고민쯤으로 생각했던 그의 말에 상처 받은 것 역시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꽁꽁 감춰서 가면을 쓰거나 좋은 날, 좋은 기분일 때만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거나 젊으나 늙으나 관계에서 상처 받는 것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