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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ul 26. 2021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잘 알았다면 좋았겠다.

나는 정말 나를 몰랐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외로움이 많았고 

누군가와 함께 있더라도 그 시간이 3시간 이상을 넘어가면 힘든 사람이었다. 

너그럽지는 않지만 친절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나는 짜증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짜증의 근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침범받을 때, 원하지 않은 만남을 가져야 할 때 그 수치가 아주 높아진다.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공황장애인가 싶을 정도로 심장이 뛰는 것은 불안증상의 하나였고 평생을 달고 사는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더불어 긴장만 하면 화장실이 가고 싶은 증상 역시 불안증상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성격이 급할 뿐이라고 넘겨짚었던 나의 성정들이 사실은 불안증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먹고 사느라 모른 척 눈 감았던 증상들을 돌아보면서 정작 나를 정말 몰랐구나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잘 알았다면 이 모든 시행착오와 괴로움이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를 너무 몰라서 마흔 줄이 넘은 중년이 되었는데도 이렇게 흔들리는 삶을 살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이십 대에는 매일이 너무 바쁘고 약속도 많아서 나를 탐구할 시간이 없었고 삼십 대에는 열심히 돈을 벌고 사회가 정해준 통념에 맞추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살면 사십 대에는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그런데 이제야 사십춘기라는 것이 온 건지 여전히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여전히 흔들린다. 


관계와 성장, 모두에 실패한 것이 나를 잘 몰라서인 것 같아 이십 대와 삼십 대의 나를 질책하고 싶다. 

왜 그때 조금 멈춰 서서 너를 돌아보지 않았니 너의 성정을 좀 더 살피고 너라는 사람을 좀 더 탐구해서 너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고 네가 즐거운 것들 사이에 너를 넣어두지 않은 거니 라고 마냥 꾸짖고 싶다. 


불혹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세상 일에 정신과 판단이 흐려지고 더 문제는 나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것. 내가 기대했던 삶 속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나 달라 당황스럽운 것도 모자라 아직도 나를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잘 알았다면 이 모든 시행착오와 괴로움이 덜 할까?

적어도 지금의 혼란함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젊은 친구들이 스스로를 잘 알 수 있게 여러 경험들을 아주 많이 해보면 좋겠다. 나는 그저 경제력에 목이 말라 어디든 일을 해야 한다는 목적으로만 살아서 일하고 돈모으고 그런 과정에 아주 조금씩 늘어나는 통장잔고만 보면서 살았는데 조금은 후회된다. 


돈은 적게 모으더라도 나를 알기 위한 시간을 더 내었으면 좋았을껄 하는 후회. 

나에게 시간을 좀 더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또 다른 후회.

좀 더 나를 잘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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