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권영주,
일본 소설을 잊고 있었다.
가볍게 읽을만한 작품으로는 일본 소설을 따라올 것이 없다. 한동안 무거운 소설들을 읽기가 어려웠다.
500 페이쯤 되는 소설은 이틀이면 충분히 읽어내고도 남았는데 시간이 많은데도 머리가 복잡해서 글자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들이다.
이북 리더기 겸 작은 태블릿을 하나 장만하고 가볍게 읽을 소설을 찾다 발견한 작품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제목에서부터 사랑이야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인데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와 삶이 건조한 다정한 소년, 그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친구의 이야기이다. 사랑이야기라면 모두 예상하는 전개와 결말이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던 작품이었다.
벚꽃도 지고 4월의 바쁜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이 차분함을 되찾는 계절이 된다.
신록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다들 살짝 느긋해진다.
그게 오월병이라고 했다
참 우아한 의미다
전철을 탄 시간은 10분이 안 됐지만, 나란히 않아 잡담을 하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간지러웠다.
신성했다.
내 생활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는 게
돈에는 힘이 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얼굴에 웃음이 피고, 마음에 든 것을 생활 속에 들여놓으면 작은 기쁨이며 일상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고 그 사람에게 나와 함께 보낸 기억이 있으면 이렇게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봐준다
잘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쉽지 않다.
심각한 표정이던 히노의 얼굴이 꼬깃꼬깃 구겨졌다. '씨익'이라기보다 '꼬깃꼬깃' 이라는 표현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기쁨을 감추고 싶은데 완전히 감출 수 없는 얼굴로 보였다.
결국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게 가장 큰 힘이 된다.
세계의 이면에는 잔인함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인간이 모를 뿐 잔인함은 사방에 몰래 숨어 있다
현실은 픽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현실은 언제나 이렇게 건조하고 당황스럽다. 주저 앉아 꼼작도 못한다.
누구나 그렇다.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그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로봇처럼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게 아니니까 이상이 생겨도 바로 모르고 움직이지 않아도 부품을 교체해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냐. 어떻게 이렇게 살아 있는 건지 실은 잘 알 수 없어. 이해할 수 없고, 굉장하고, 동시에 겁나는 일이야.
기적 같은 일, 그럼 가미야의 기적은 이제 끝난 건가
정적을 이해하는 세련된 자상함이 느껴졌다.
어떤 상처든 한번 입고 나면 완전히 사라지진 않다. 상처는 기억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픔이 계속되진 않거든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고 빛바래지 않는다
권영주 번역가의 번역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읽을까 말까 고민을 좀 했지만
분량도 적었고 가벼운 일본 소설이라 한나절 만에 읽어버렸다.
예상 가능한 결말에 진부하다면 진부한 전개지만 곳곳에 눈물바람을 일으키는 장면들도 있었고
건조한 마음에 몽글몽글한 따뜻함이 느껴지던 작품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결국 신파는 살아남는다 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