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투자스쿨 미션] 226> 고백성사

성찰하기

by 가이아Gaia

20.09.07




고백성사





내겐 한때 미신은 절대적 종교였다.

굿을 한다는 건 어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오는

불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한 때라 하기에

너무 긴 10년이란 세월 동안

철철이 때때로 굿을 했고

그 굿을 떼는 일은

술 중독 도박중독보다 무서운 형벌이었다.





돌아보면 그 청춘에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어느 날 나는 세례를 받았다.

생각없이 한 주도 빠짐없이 성당을 나갔고

세례 시험을 수능처럼 100점을 맞을 만큼

어딘가 기대고 싶었던 날

그리고 나는 주님이 계신 줄 모른 채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나는 종교를 몰랐다.






그냥 마리아님이 성모님이

아기를 안고 있는 그 모습에 이끌려

십자고상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음은

너무도 절실했던 내 삶이

미치도록 해야 할 일을

잠시 끝내려 한숨 돌렸을 뿐인데,

내 청춘은 온데 간데 없이

턱 하나 중년이 되어가는

여자가 앉아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의 세례명은 가브리엘라,

2019년 4월 세례성사를 받기 전,

나는 누군가 말하는 미친년이었다.

늘 꿈을 꾸면 법사님께 꿈해몽을 해야 하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귀신이 좌지우지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굿판을 벌일 때마다

통장의 돈을 끌어다 쓰고도 아깝지 않음을 뭘까?

그렇게 굿이라고 해야

내 미래가 불안하지 않을 것 같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래 아주 오래 전

내 남편이 쫄딱 망했을 무렵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때

어린 10살 6살 아이를 데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쫄딱 망해보면 안다.

아무리 가까운 식구도 친척도 친구도

타인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있는 돈 150만원으로 초라한 굿을 시작했다.

절망 앞에서 고통속에서

사는 일이 힘들어서도 그랬지만

난 너무너무 외로웠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쉽게 빠져들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애타게 찾았던 건

아무도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을 때

가장 가까이 귀신은

24시간 내 옆에서 나를 도와준다고 믿었다.

아이 둘을 버리지 않고 혼자 키워내야 하는 힘은

절망에서 나를 일으켜 내었고

불행을 생각할 시간을 앗아갔으며

비참하기엔 내가 너무 젊었었나보다.

하루 한끼를 먹어도 배고프지 않았고

하루 잠 세시간 자도 육체는 멀쩡했다.

불멸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신기한 시절이었다.






자식을 사랑해서 키운게 아니라

자식이니까 키울 수 있었고

죽는 것을 몰라 살았던 게 아니라

죽고 난 후의 자식 앞날에 죽지 않을 수 있었음을

지금 내 두 녀석들은 모르리라.

종교를 찬양하며 주님을 찾기엔

그런 시간 마저 아껴 살아내는 일에 먼저였고

악마의 유혹보다 무서운게 가난이었다.

무엇이 진짜 인생인지 가짜 인생인지

분별할 수 없음은

미래의 천국보다

오늘의 생활비가 더 급급했는지 모르고

톨스토이의 부활보다

내가 내일 아침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더 급선무였던 나날들의 긴 15년

내 인생의 12달

그렇게 봄은 흘러갔고

때를 놓친 씨뿌림은

내 인생 여름까지

작열하는 태양처럼 뜨거웠다.






그렇게 내가 심은 나무는 무엇이며

내 나무에 열매는 맺힐 수 있을까?

돌아보니 나는 어느 덧 가을 앞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는구나 깨닫고 나니

인생은 짧고 시간은 없다.







늘 내 마음 밑바닥에 깔려있었던 불안감

아직도 놓지 못하는 불안감의 노예가 되고 보니

신에게 저버림을 당할까?

사람에게 저버림을 받을까?

자식에게 저버림을 줄까? 싶어

스스로 불우한 줄 그 병에 갇혀

굿에 빠졌던 건 아닐까 싶은 되돌아 봄은

내 분노가 사그러들고

인생의 허물도 보이는 본연의 내가 되고보니

내가 애타게 찾았던 건

바로 이것이었구나,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태오 26. 26-28)






매번 미사 때 나는 늘 거짓말쟁이가 된 듯

나는 아직 주님을 모르지만

내가 그토록 원했던 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

내 희생이 두려워서 였구나.

성모 마리아상을 볼 때 마다

내가 두려웠던 건 내 희생이었었구나.

그래서 베드로의 눈물처럼

나는 참 상처받은 사람이라

타인의 고통을 보기보다

내게 더 큰 자비심을 가지려 했나보다.

그렇게 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누군가 아직도 자신이 사는 일에 두려워

굿을 한다거나 하려한다면

묻고싶다. 과거 나에게처럼.






당신이 어느 날 임종을 맞이하게 될 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지금도 나는 큰소리로 기도하기 보다

내 입에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더 많이 하려 노력한다.

혹시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후회없이 죽을 수 있음은 무얼까?






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죽은 뒤의 삶을 알 수 없기에

기도하듯, 살아서 시체처럼 살지 않으리라.

내가 한때 굿을 그렇게 하였던 것 마저

가슴에 불타오르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음이듯

우린 꿈꾸는 대로 살수 없기에

나는 사는대로 꿈을 꿀 것이다.

오늘도.

그리하여 내 인생의 크리스마스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질 수 있도록.





미션.

죽기 전에 육체를 아끼지 말며

썩을 시체만을 떠안고 살지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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