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정신력이 부족해서, 의지가 약해서, 쉽게 포기해서 우울증이 생긴다는 시선이 있습니다.
우울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견에서 비롯된 잘못된 시선이죠.
사실 우울증은 개인의 나약함과는 무관한 질병이에요.
오히려 내내 강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사소한 자극에 쉽게 무너지곤 합니다.
우울증을 단순한 마음가짐의 문제로 치부하는 건,
다리가 부러져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네가 더 강했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과학적 연구와 사례를 통해 우울증이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보죠.
2023년 세계보건기구는 우울증을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8,000만 명이 겪고 있는 흔한 정신 건강 문제로 정의하며,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 생물학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병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우울증은 나약함의 신호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죠.
누구에게나 무기력한 순간이 찾아온다
우울증이 나약함의 결과라면, 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잘나가는 사람들도 이 병을 겪는 걸까요?
미국의 수영 선수이자 수많은 신기록을 보유한 스포츠 영웅 마이클 펠프스는 극도의 우울증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하며 스물세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전설적인 운동선수였어요.
하지만 “나는 내면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고통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우울증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의 사례처럼, 목표를 이루고 인생의 정점을 찍은 사람도 걸릴 수 있습니다.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스포츠 선수들조차 우울증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이와 유사하게, 유명한 정치인과 기업인들 역시 우울증을 겪습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생애 내내 극심한 우울증과 싸워야 했어요.
그는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라고 부르며
“가끔은 이 검은 개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덮쳐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죠.
만약 우울증이 나약해서 생기는 질병이라면,
전쟁 중 국민을 이끌었던 강인한 지도자인 처칠이 평생 우울증과 싸워야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울증은 단순한 정신적 약함이 아니라, 뇌의 생물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공동 연구(Choi et al., 2019, 《Depression and Anxiety》)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들도 운동과 같은 신체 활동을 증가시키면
우울증 발병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뇌 기능과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게 만들어요.
단순한 마음가짐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화학적 및 구조적 변화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이죠.
앨릭스 코브는 『우울할 땐 뇌 과학(The Upward Spiral)』에서
“이 모든 회로는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언제든 우울증의 하강 곡선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우울증은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생물학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질병인 거죠.
그러니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서 ‘내가 나약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어요.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저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이니까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힘든데 힘들지 않은 척하며 자신을 속이면 결국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나는 강해야 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감정을 억누르면, 그것이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가장 필요한 건, 마음 알아주기
누군가 우울증 환자에게 “네가 문제야.”, “너 참 나약하다.” 같은 말을 한다면 그건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이는 당사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자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죠.
우울증을 비난하면 상처만 커집니다.
“힘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조금만 더 노력해 봐.” 같은 격려의 말도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어요.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할수록 치료를 회피하거나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반면에, 사회적 지지가 우울증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해로운 건 비난이고, 가장 필요한 건 이해와 공감입니다.
『회복탄력성』과 『내면소통』의 저자 김주환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울한 건 문제가 아니다. 우울한 자신을 미워하고 견디지 못하는 게 문제다.
자기 혐오가 문제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울증은 오히려 무기력증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라고 덧붙입니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사람도 심한 우울증을 겪을 수 있어요.
우울증을 단순히 기분의 문제로 치부하는 건 위험한 오해입니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죠.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감기는 며칠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지만, 우울증은 그렇지 않아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죠.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울증은 몸과 마음 모두 심하게 아픈 전신 질환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우울증은 정신 질환이 아니라 전신 질환이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저하된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울증은 수면 장애, 면역력 약화,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증가시키며,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려요.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은 “너는 나약해.”가 아닙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 주세요.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어.”
“내가 네 곁에 있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줘.”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적극적 독려가 아닌 공감입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배우 로빈 윌리엄스 역시 우울증을 겪으며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관심은 말보다 존재로 더 깊게 전달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윤홍균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은 기둥과 같고 감정은 기초와 같다. 주위에 소중한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으면, 생각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먼저 감정을 수습해 줘야 한다. 거의 유일한 방법이 공감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화가 났구나.’ 공감은 감정의 이해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 누군가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이해와 공감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건 강요의 언어가 아니라, 조용한 관심과 진심 어린 공감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눌 때 비로소 우울증이라는 어둠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박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