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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버튼] 부정적 감정은 억누르고 감춰야 한다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by 박근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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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에 '나쁜 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 김혜남 ―


우리는 보통 슬픔, 분노, 불안, 두려움 같은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숨겨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정말 그래야 할까요? 과연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쁜 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모든 감정은 정상적이다. 단지 도가 지나친 극단적인 감정이 문제가 될 뿐이다. 억압된 감정은 중화되거나 승화되지 못하고 곪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감정이든 생기면 그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은 우리 몸이 보내는 일종의 신호에요. 불안은 위험을 경고하고, 분노는 부당함을 알리죠. 슬픔은 상처를 보듬을 시간을 주고, 두려움은 신중한 결정을 하도록 돕습니다. 심리학에서도 모든 감정에는 기능이 있다고 말해요.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게 건강한 방식입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의 중요성을 잘 보여줘요. 주인공 라일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슬픔'을 무조건 배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슬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죠. 슬픔은 단순히 부정적인 게 아니라, 공감을 유도하고 치유를 돕는 감정이었어요. 영화는 우리에게 모든 감정이 소중하며, 특정 감정을 억누르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결국 내 일부다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감정을 습관적으로 억누르다 보면 우울증 및 불안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의식 속에 켜켜이 쌓여 결국 다양한 방식으로 터져 나옵니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웨그너Daniel M. Wegner 교수는 이를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Ironic effects of thought suppression'라고 명명하며, 특정 생각이나 감정을 억누르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감정은 마치 여인숙에 온 손님과 같아요. 페르시아 시인 잘랄레딘 모하마드 루미는 '여인숙'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쁨과 슬픔, 우울함과 분노가 문 앞에 나타난다 해도, 모두 환영하라. 그들은 너를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온 손님일지도 모른다."


감정과 신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해요. 19세기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칼 랑게가 제안한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에 따르면, 감정은 신체적 변화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예컨대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하는 것을 뇌가 인지하면 이를 두려움이나 분노로 해석한다는 거죠. 이는 감정이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려면 신체를 움직이고 긴장을 푸는 활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김주환 교수도 감정과 몸, 생각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몸이 뇌로 신호를 올려보내고, 뇌가 그것을 감정으로 인식한다. 편도체 활성화로 인해 승모근이 올라가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등 몸의 변화로 두려움, 분노, 짜증의 감정이 올라오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거다. 생각으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생각은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감정을 바꿔야 생각이 바뀐다. 감정을 바꾸려면 몸을 바꿔야 한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감정은 몸의 문제다."


즉, 감정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몸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일 때는 억지로 생각을 떨쳐내려 하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하나, 감정을 '좋고 나쁜 것'으로 나누지 마세요. 불안, 두려움, 슬픔 등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가 있어요.


둘,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인정하고 표현하세요. 감정 일기를 쓰거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셋, 감정이 나를 휘두르지 않도록,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세요. 명상이나 심호흡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됩니다. '내가 현재 이러이러한 감정 상태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넷, 몸을 움직이세요. 몸에 집중하세요. 산책, 달리기, 스트레칭, 수영 다 좋습니다. 생각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감정을 다스리는 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감정은 나의 일부입니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는 게 더 건강한 삶으로 가는 길이죠. 감정을 알아차리세요. 그 감정이 왜 나타났는지 들여다보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노력하세요. 무엇보다, 감정을 다스리고 싶다면 몸을 움직이세요. Move, Move!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박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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