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말보다 침묵이 낫다

의도보다 말 자체가 중요하다

by 박근필 작가

온화한 모습으로 다정한 말을 건네지만,

결과적으로 고통을 준다면 잔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중략)



내가 생각하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은

상대를 배려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을 준다.



자신의 온화함과 다정함을 통째로 던지기만 한다고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다.


- 히타노 히로시, <내가 어릴 적 그리던 아버지가 되어>, 애플북스





<내가 어릴 적 그리던 아버지가 되어>의 저자는 죽음을 앞둔 암 환자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알리자,

주변에서 암에 좋다는 것들을 권하는 연락이 쇄도했다고 한다.



대부분 '암을 낮게 하는 항아리'나, '기적의 물' 같은 영적 요법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대체 의학 같은 것이었다.



모두 온화한 모습으로 전한 다정한 선의였지만,

죽음의 무게에 비해 가벼운 조언들이 반복되자

그것이 나중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수세미를 받아 든 그때 그 작가가 전하려던 말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다정함을 통째로 던지기'만 한다고 해서

다정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을.



갑상선 암 치료를 하고 있다는 친구에게

'괜찮을 거야. 요즘 갑상선 암은 암도 아니래."라고

위로한 적이 있다.



며칠 후 책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상선 암 환자들이 가장 상처받는 말 중 하나로,

내가 한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완치율이 높은 암이니 너무 걱정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란 걸

친구도 짐작했겠지만,

여전히, 듣는 사람의 입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말이었다.



검사와 수술 자체만으로 힘들고, 완치 후에도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하며 추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재발일까?' 하는 불안과 공포가

덮쳐올지도 모른다.



상대를 위로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해서 상대의 아픔을

가볍게 치부할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신혜원, <오늘도 밑줄을 긋습니다>







말, 언어의 힘은 강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이점을 쉽게 간과합니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조차 안 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심해서 한 말도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말한 의도만 좋다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 아닌데 말이죠.



상대방이 잘 되라고,

상대방을 위한다고,

위로나 조언을 쉽게

함부로 하진 마세요.








말은 의도 보다 말 자체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말이었어도

상대방이 불편함이나 불쾌함,

언짢음이나 괴로움을 느꼈다면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입니다.



그런 말은

'나는 선한 의도로 한 말이니

난 선한 사람이야,,'라는

자기만족을 위한 말 밖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 있죠.



"힘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물론 이 말을 듣고 정말 힘을 내고

긍정적인 기운이 생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더 괴롭거나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게 사실입니다.



그럴 때 위로의 말은

'언어폭력'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위로의 말은 말하는 사람의 진심과 진정성이

아무리 많이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잘못 전달될 수도

있다는 점을 꼭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반드시,

이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를 깊게 생각해 본 후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때론 말보다 침묵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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