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는 70여 년을 살아오시며 겪으신 굵직하고 파란만장한 굴곡들이 내용 전반에 깔리며 다소 무거우면서 교훈적인 에세이일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좀 더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의 책이다.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골라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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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도 선선함이 있다면 좋겠다. 가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과 별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 보여도 수억 광년씩이나 떨어져 있는 먼 거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땅에서 올려다보는 별과 나의 거리는 또한 얼마나 멀고도 먼 거리인가. 별 사이처럼 사람 사이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사람도 사랑에 너무 목매지 말았으면…. 아마도 사랑의 상처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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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아 친구가 떠난 지도 10년이 지났는데도 흉터만 남은 상처에 묵직하게 둔통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들을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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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로의 인생에 자연스럽게 등장해주는 것, 이것이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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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끼리 소통도 그렇지 않을까? 무얼 작정하면 시작부터 실패다. 그 사람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고 공감할 때 소리가 잘 들리고,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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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분에 심은 코스모스에서 피었다 진 꽃을 따주며 강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식물이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일은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 일이에요. 피었다 진 꽃을 따주면 그 에너지가 새로운 꽃대 쪽으로 가서 더 힘껏 꽃을 피워 씨앗을 맺을 수 있어요.” 속으로 ‘아하! 진리가 따로 없군!’ 했다. 털고 솎아내야 더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구나. 과거의 영광은 선선히 내어버려야 건강한 씨앗을 맺을 수 있구나. 거기서 귀한 가르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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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자기 일을 열심히 안 하겠는가! 최선을 다해 열심으로 임하는 것, 그건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다. 하지만 공연은 이상하게 노력과 상관없이 변수들이 생긴다. 될 듯한데 시원하게 안 터지고, 신통찮은데 빵빵 터진다. 사람의 노력과 별개로 운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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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걷는 이유를 묻자 “길에선 욕심이 사라져!”라는 명언을 남기시기도 했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가방의 무게와 부피, 그 정도면 길에서도 넉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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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런 한두 사람만 있으면 된다. 자기의 모든 것을 설명 없이도 알아줄 친구. 착착 맞아떨어지는 찰떡궁합의 임자. 그런 친구가 내게는 살아갈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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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는 건 마음을 나눈 기억이다. 마음과 마음이 닿았던 순간의 기억이 우리를 일으키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살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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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역시 나를 사랑하고 지켜준다. 힘들지만 도움을 청하면 다시 안전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내 편이 있다는 믿음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큰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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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별일 없이 무탈해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심심해 죽겠다고 하니, 친구 어머님이 따끔하게 야단을 치셨다. “그날이 그날인 게 더없이 좋은 거야. 별일 있는 게 무에 좋겠냐?” 세월 지나 곱씹어 보니 옳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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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부럽잖은 것도 별거 아니다. 내 배가 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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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느 소수 민족이 차 만드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어서 열심히 보았다. 굵직한 대통에 찻잎을 꾹꾹 눌러 담고 김장독 묻듯이 땅에 묻고 6개월 이상 발효시켜 꺼내 차를 우리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 맛이 난단다. 차를 인생에 비유하는 내레이션도 명품이었다. “차는 인생이고 인생은 차다. 즉 얼마만큼의 고난과 얼마만큼의 전환점을 겪어내면 차처럼 우리 인생도 성숙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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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내 안에 있는 그 어린아이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어떤 아픔인지 너무 잘 알기에 그냥 입을 다문다. 위로의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그래, 나 그거 알아. 너도 그랬구나’ 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희한하게 같은 아픔끼리 같은 값을 약분해 지워버리고 아픔이 잦아든다. 아파보기 전에는 모르지. 아파봐야 아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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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결혼했을 때, 유복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그늘이 없을 거라고 기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육 남매가 똘똘 뭉쳐 사니까 부러웠다. 그런데 어느 집이든 다 그림자가 있더라. 평온해 보이는 집도 그 안에 자리끼가 땡땡 어는 윗목이 있다. 가족 안에서 상처도 많이 받고, 어쩌면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도 가족이다. 집집이, 사람마다 그 안에 금이 가고 깨져 다시는 붙일 수 없는 유리 조각이 있다.
누구나 자기 삶의 무게가 제일 무겁다. 다시는 아픈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어찌 인생이 우리 마음 같을까. 상처가 난 자리에 또 상처가 나면 당연히 더 아프다. 하지만 아무리 죽겠어도 시간은 흐르고 흉터 위에 새살이 돋고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상처 없이 타인의 불행에 어찌 공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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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가도 비가 오면 다시금 이는 흙탕물 같은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순간을 늘리는 게 속힘이 되었다. 누가 알아줄 필요 없는 자족의 순간 말이다. 음원이 세상에 발표되기 전, 몇 달에 걸친 작업이 마침표를 찍었을 때 그 성취감은 썩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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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스로 칭찬할 거리를 만들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뭐, 그 많은 상처들이 다 내 잘못인가.
하늘에서 느닷없는 똥바가지가 떨어졌고 하필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게야.
“네 잘못이 아니야.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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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이미 버렸고, 돌봐주지 않아 아예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의 사력을 다함!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 결핍이 이렇게 놀라운 꽃을 피워냈다는 글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버려진 극한 상황에서 다시 피어났을까. 그것을 보며 결핍이야말로 가장 큰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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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언덕 꼭대기에서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데, 제일 처음에 넘어지는 법부터 가르쳐준다. 잘 넘어질 수 있어야 잘 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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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하나쯤 있다. 자전거 타기, 수영, 서핑, 영어(어학), 취업, 좁혀지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 용서… 등등. 그것만 할 줄 알면 세상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은데, 참 뛰어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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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전에 판단하지 마라.”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쪽이 닳고 뒤축이 구겨진 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면 그도 삶의 무게를 이렇게 버티며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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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도 여러 번 꺾이고, 뜻대로 맞아떨어진 적도 드문데 하물며 다른 이라고 안 그럴까. ‘그러면 안 되지!’를 ‘그럴 수 있어!’로 바꾸면 상황은 미워해도 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지는 않게 되더라. ‘걔도 오죽 여북했으면 그랬을까?’ 하며 끌어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