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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Dec 27. 2018

디자이너의 퇴사고민

끈기의 기준이 무엇인가

이 매거진의 디자이너는 구직 중을 첫 글로 시작하였다. 그렇다. 나는 퇴사하였고 구직하였고 그렇게 이직하여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3개월이 다 지나지 않아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이 회사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많은 상황들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지 2개월이 지날 즈음, 내 몸에는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1년 다닌 첫회사에서 있었던 증상과 비슷했다. 첫 번째로는 허리의 통증이다. 점점 앉아있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매일매일 계속되었다. 두 번째로 체중감소이다. 현재 나는 47-8킬로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데, 지금 회사를 첫 출근 할 때에는 50-52킬로 정도였다. 두 달이 안 지나서 서서히 몸무게가 줄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세 번째로는 처음 겪어보는 두통이다. 검색하며 알아보니 편두통의 증세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머리에서 심장 박동이 느껴지고 그 울림에 속도 메슥거리고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 밤에 잠을 자다 깰 정도의 두통을 느낀 적도 있었다. 네 번째로는 구내염이다. 어느 한쪽에서 시작된 입병이 다 나을 참이면 다른 위치에 입병이 생기는 현상이다. 계속해서 입에 염증이 사라지지 않는 데, 내 입안을 본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전에 없이 커다란 입병이다. 말할 때에도 괴로울 정도이다.


내가 이렇게 몸의 증상에 예민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처음 다닌 전시 인테리어 회사에서 나는 몸의 다양한 반응들을 무시하다 결국에는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었다. 체중이 거의 10킬로 가까이 감소하고 위염과 장염이 한 달 이상 낫지 않았다. 출근하는 도중 현기증에 주저앉기도 하였다. 아는 사람 중 한 명은 거식증에 걸렸냐며 걱정 이상의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기침을 달고 살았다. 퇴사 후 나는 입사 전의 몸무게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1년 간 내 몸이 아주 많이 약해져 버렸음을,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회사에 애사심을 넘어 희생정신을 가진 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는 없었다. 죽고 나면 열정이고 돈이고 다 없는 것이라. 나는 그 후로 내 건강을 갉아먹는 열정은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첫회사만큼 야근이나 주말출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회사는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까? 이 회사를 퇴사할지 말지에 대해 결정하기 전에 내가 찾은 긍정적, 부정적 요인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컨펌이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나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은 데 사수가 없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감이 크다. 사수가 있었다면, 눈치 보기에 바빠 자신감의 상실이 채 일어날 새도 없었을 것이다. 상사란, 스트레스의 원인이자 심리적 지지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디자인팀 팀장이기에 모든 업무적 책임이 나에게 있다. 단계적으로 올라간 것도 아니기에 갑자기 이렇게 큰 역할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위치이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고 양면성을 가진다.

디자인을 비롯한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해 간섭 할 사람도 없다. 직장인들은 그렇다. 점심 식사를 하는 데에도 어떤 메뉴를 골라야 상사가 좋아할지 고민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나, 그런 사소한 일로도 부하직원을 눈치 주는 상사들이 회사에는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나에게 자유를 주는 요인으로 사수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디자인과 디자인을 제외한 크고 작은 일들에서 아주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기획자들과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내부, 외부적으로 작은 일들이 많아서 완성도 높은 디자인 작업이 나오지 않는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작은 일들 때문에 괜찮은 기획을 받아도 작업 시간을 많이 쓸 수가 없다. 어느 정도의 퀄리티에서 스스로 끊어내고 작업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거기에 컨펌자(디자이너가 아닌, 내부 기획자 혹은 외부 클라이언트)가 여럿 있어서 아주 사소한 수정들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로인해 괜찮은 디자인이 처음의 모습을 잃고 안괜찮아지는 일도 자주있다. 디자인적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신입 디자이너 일 때에는 나의 디자인을 바꾸려고 하는 사수가 밉기도 하였다. 내 눈에는 이게 더 나은 자기는 아니라며 나의 디자인에 손을 대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 그런 불만을 가지고는 사수의 더 다양한 경험과 공부로 얻은 어떤 것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느리게 성장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사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사수가 없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수가 없어보는 경험을 함으로써 사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좋은 일일까.


야근이 적지 않은 편, 연봉이 높지 않은 편. 회사생활을 무난히 끝내고 자기 계발에 힘을 쏟을 수도 없다. 야근이 적으면 퇴근 후 생산성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 연봉이 높으면 돈을 주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여의치가 않다.


좋은 사람들이 많으나, 그 반대도 아주 거대하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처럼,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그러하다.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그 반대가 아주 막강하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디자이너에게 또 다른 이직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은 이직을 고민하는 것도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고민이 만든 스트레스가 나의 건강을 위협 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뽑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적응을 위해 새로운 동료를 배려하는 일은 드물다. 업무 적응도 하기 전에 내부적인 큰 프로젝트들이 연달아 주어졌다. 테스트를 하는 것인지 나가라고 하는 것인지 사수도 없는 마당에 힘에 부치는 것이다. 취업 난이라고 하는 요즘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나는 언제쯤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될 수 있을까. 회사를 평가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결국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회사는 개인의 건강이나 성장보다는 수익을 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야 회사가 이 어려운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회사의 수익보다는 나의 연봉과 나의 인생 밸런스와 나의 성장, 그리고 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이 힘든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퇴사를 고민할 때에는 구직할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기준을 두고 천천히 점수를 매기면 좋다.

(디자이너는 구직 중 첨부)


  1.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 가

     (ex. 온라인 마케팅 디자인, 출력물 디자인, 어플 ux 디자인 등 디자인의 종류나 방향)

  2. 회사 경영에 있어 중요한 신념(생각)은 무엇인가

  3. 회사 위치는 어느 곳, 회사 건물은 깨끗한지, 회사 규모는 어느 정도 인지

  4. 연봉


1. 원하는 디자인 종류였으나, 방향이 맞지 않다. 사수 없이 새로운 디자인을 접하는 것은 너무나 돌아가는 길이 아닌가. 그래도, 전에 하던 디자인과 같은 경력이 아니었으나 경력을 인정해 주었다. 또 나는 다양한 디자인의 경험을 쌓기 위해 이곳으로 왔는 데, 그 부분은 아주 충족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다양한 디자인을 접할 수 있는 곳에 이렇게 경력을 인정받고 이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높은 퀄리티의 작업물은 아니나, 그래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전 UI/UX디자인과 퍼블리싱은 조금씩 무뎌 질 것이다. 어느정도는 감수하고 이 방향을 결정하였지만,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2. 면접을 볼 당시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을 중요시하는 회사의 경영 마인드였는 데, 실상 다니기 시작하니 아니었다. 회사의 이익에 집중한 나머지 직원들의 야근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한 사람에 의해 주도적으로 형성되어있다. 성과에 따라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좌우 되기도 한다.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매너 있고 선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로 인하여, 대부분의 대화들이 아주 따뜻하고 즐겁다.

3. 회사의 위치, 건물, 규모 모두 전의 회사에 대비 아주 훌륭하다.

4. 연봉은 기대를 충족되지 못했지만, 나는 월급이 남는다. 그래서 연봉 문제는 없다.


결론은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다들 그만둔다 그만둔다 하며 1년, 2년 다니더라라고. 어차피 모든 게 만족스러운 것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원하는 바가 80% 정도 충족된다면 20% 정도는 포기하는 마음이 있어야 살기 편한 세상이다.

그러나 언제나 나는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한다. 잠시 타협하는 일이 있더라도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디자이너가 되지 말자. 나의 소중한 인생,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퇴사를 고민하는 디자이너에게 누구든 '끈기'를 논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말하고자 하는 끈기의 기준이
몸의 생명력을 깎으며, 인생의 목표를 꺾으며, 마음에 한숨을 쌓으며 버티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끈기는 없다고 대답하겠다.


나는 그런 끈기는 없고

내 소중한 인생을 지키는 끈기를 가지고 살아가겠다.

내 건강을 지키고, 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고, 내 마음을 잔잔히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이다.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에서 계속해서 걷고 뛰는 남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요는 디자이너도 덩실덩실 춤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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