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의 긴 추석 연휴를 보내고 출근하는 월요일은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그동안 쌓인 뉴스레터들과 업무들이 메일박스에 가득하다. 출근 후 늘 해 오던 루틴대로 원두를 고르고 갈아서 드립서버 한 가득 커피를 내린다. 보통 아메리카노 한 잔이 350ml 정도 된다고 하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이다. 원두는 세 배 정도 더 갈아서 드립을 한 것이니 향과 맛과 카페인은 1.5배 이상이 될 것 같다.
모닝빵을 하나 입에 물고 커피와 번갈아 가며 메일을 읽어나간다.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과 안부도 묻고 천천히 긴 연휴를 떨쳐내기 위한 나름의 준비운동을 시작한다. 회사 모니터에 촛점을 맞추기 쉽지 않은걸 보니 연휴가 길긴 했나보다.
워밍업을 하는 느낌으로 짧게 짧게 여러가지 일들을 빠르게 옮겨가면서 기웃거리면서 끄적거린다. 타이머는 20분 단위로 여러 번. 본격적인 10월의 업무가 시작되고, 내년까지의 스케쥴이 나오는 기획과 보고를 한다. 벌써 10월이 반은 지난거 같은 느낌적 느낌. 마지막은 내일 할일을 다시 리스트업해서 작은 포스트잇에 적어서 키보드옆에 붙여둔다.
오늘은 리갈패드에 주로 메모를 적었다. 그날 그날 손에 잡히는 노트는 다르다. 다이어리 처럼 하나를 쭉 쓰면 챙기기는 편하지만, 원하는 주제별로 나누기 힘들고 뜯어서 모으기도 어렵다. 그래서 쓰고 나서 뜯어서 정리하고 보관할 수 있는 리갈패드가 항상 중심이었고 몇 년 전 부터는 므네모시네 노트를 많이 쓰기 시작했다. 모델은 166, 177, 179, 182, 188, 196을 가지고 있다. 주로 B5부터 A5의 사이즈를 왔다갔다하면서 주제에 따라 낱장으로 보관하는 바인더도 몇 개 준비해두었다. 손바닥으로 덮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도 있다. 도쿄에 여행가서 긴자의 이토야에서도 사고, 아마존 제펜 사이트에서도 주문하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도 구해서 많이 쌓아두었다. 부지런히 쓰기만 하면 된다!
물론 메인으로 사랑하는 종이질감은 미도리 MD 노트인데, 낱장으로 분리가 되지 않아서 다이어리처럼 쓰고 있다. 도쿄에 간김에 트레블러스 노트도 여러 권 사왔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 연휴기간에 서재를 정리하면서 쓰지도 않고 쌓아둔 노트들을 정리했다. 예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노트부터 알라딘에서 함게 구입한 노트, 책의 부록으로 따라온 노트 등 거의 60cm 넓이 가까이 되는 것들을 다 버렸다. 가지고 있지만 쓰지 않으면 그저 보관하는 공간만 차지하는 쓰레기일뿐. 여기저기 구석구석 그런 것들이 눈에 띌때마다 이제는 과감히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하게 치우고 사는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듯.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 사진으로 저장해 두었는데 그 말이 계속 딱 맘에 든다.
“오랫동안 나는 이제 곧 진정한 삶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 앞에는 언제나 온갖 장애물과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과 바쳐야 할 시간들과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그런 다음에야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마침내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 장애물들이 바로 내 삶이었다는 것을.”
“For a long time it had seemed to me that life was about to begin. But there was always some obstacle in the way, something to be gotten through first, some unfinished business, time still to be served, a debt to be paid. Then life would begin. At last it dawned on me that these obstacles were my life.”
알프레드 디 수자. Alfred de Souza. <시인,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의 작가>
20251013. 1,898자를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