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는 필요해서 사는게 아니라 사놓고 생각날 때 쓰는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것 처럼 학교앞 문방구는 탐구할 것들이 잔뜩 있는 무궁무진한 동굴 같은 곳이었다. 지우개 하나를 사러 간 것이지만 다른 것 까지 한아름 사서 나오게 되는 곳. 옛날 선비들이 늘 곁에 두었다는 ‘문방사우’와 앞 두 글자는 같은 한자일텐데 왠지 문방구라고 하면 친근하다.
무언가 모으는 취미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것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문구류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문구를 가지고 있다. 길었던 추석연휴에 서재를 치우면서 책도 많이 정리했지만, 가장 큰 수확은 문구를 분류해서 불투명한 박스에 넣고 가지런히 책장에 쌓은 것이다. 책상 위에 널려있고 쌓여있어서 금방 찾기도 쉽지 않고 책상 안쪽에 놓인 맥미니를 쓰기도 힘들었다. 지금도 다 치우고 깨끗해진 책상위에 키보드를 올려놓고 이 글을 적고 있으니 최근에 정리하여 가장 보람된 작업이었다. 책상 한 켠에 놓인 4단 책장에 수납된 문구류는 종류별로 분류해서 찾기도 쉽고 꺼내기도 쉬워져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만년필과 잉크도 필통과 박스에 잘 수납해 두었으니 더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다른 문구에 대해서도 박스별로 하나씩 천천히 글로 적어볼 생각이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아트박스나 텐바이텐을 오래 이용하긴 했는데, 최근에는 좀 더 전문적이고 오래된 문구점을 선호한다.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때에도 독립서점의 한 켠에 있는 문구코너를 빼놓지 않고 살펴보았고, 서울과 근교를 중심으로 종이나 엽서, 글쓰기 도구 등 특별한 주제를 가진 문구점도 몇 군데 다녔다.
최근에 가 본 곳 중에 기억에 남는 곳은 온라인에서 주문을 먼저 하고 매장을 나중에 방문하게 된 성수동의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였다.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15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에 입장할 수 있었다. 1층이 가장 많은 문구를 전시하고 있었고 3층으로 구성된 공간은 올라갈수록 전문적인 구성이었다.
도쿄에 갈때면 항상 들리는 가장 좋아하는 문구점은 긴자에 있는 ‘이토야’다. 큰 건물인 본관과 바로 뒤 작은 건물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10층과 5층 정도의 구성으로 층별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빼놓을 수 없이 모든 층을 구석구석 천천히 돌아보려면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계획해야 한다. 특별한 한정판 감귤색 잉크를 사기 위해서 만년필 전문점 ‘분쿠박스(Bungubox)’를 찾아 한참이나 걸어다닌 기억도 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쓴다는 것이고(물론 돈도 들어간다), 내 것으로 가져와서는 두고 사용하는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기에 문구는 매우 좋은 취미다. 이것들을 사용해서 새로운 콘텐츠와 지식과 경험을 남겨서 추억으로 삼을 수도 있으니 1석3조라고 생각한다.
20251024. 1,397자를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