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안개

더 짙은 안개속을 거닐고 싶다..

by 이웃의 토토로

아침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 주로 가을 아침에 날이 차가워지면서 안개가 많이 피어올랐는데 겨울 안개는 기억에 잘 없다. 대학생 시절 강변에 놀러가서 새벽에 보던 물안개 같이 뽀얀 회색빛의 안개다. 금요일이라서 그런건지, 안개가 많이 끼어서 그런건지 평소와 같은 시간에 나온 출근길은 무척 한산해서 회사에 금방 도착했다.


비나 눈이 내리는 날 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을 좋아한다. 안개가 좋아진 건 어느 영화나 소설이었을까, 언제부터였을까. 너무나 자욱해서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을 걷고 싶다. 대학생 시절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기억에 남는 안개 낀 날은 세 번 정도 있다. 첫번째는 상계동 이모집에 있던 날, 해가 지고 중랑천에서 짙은 안개가 몰려와서 동네를 온통 뒤덮었다. 바로 앞 동이 몇 동인지 써있는 숫자는 알아볼 수 없었고, 건물마저 알아보기 힘들었다. 퇴근하던 이모가 노원역에서 걸어오는 길이 15분 정도 걸리는데 집을 찾을 수가 없다고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했다. 나가도 보이질 않으니 마중을 갈 수도 없었고 대략 한 시간이 걸려서 집에 오셨다.


두번째는 엠티를 갔다가 아침에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나오던 강화도였다. 남쪽 초지대교를 건너서 김포를 가는 길이 자욱한 안개에 쌓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천천히 가는데 거의 직선으로 뻗은 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위험한 것 보다 ‘아, 내가 항상 꿈꾸던 안개가 끼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상황이 지금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엄청 좋았던 기억이 난다.


세번째는 일주일 동안 진행된 신규입사자 교육의 강사로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 근처 연수원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신규입사자들은 합숙이고 강사는 출퇴근이라 첫 날 교육을 끝내고 돌아오는 오후 5시였다. 연수원은 작은 지방에서도 외진 산 속에 있었다. 길은 구불구불했고 논밭이 펼쳐진 왕복 1차선 길을 20분 정도 올라가야 했다. 그 길을 돌아나오는데 연수원을 나오자마자 짙은 안개가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길도 안보여서 비상 깜박이를 켜고 헤드라이트를 켜니 안개에 불빛이 반사되어 앞이 더 안보였다. 초행길에 들어가던 기억을 거꾸로 되돌려서 나오는지라 시속 5km도 안되는 속도로 천천히 나왔다. 네비게이션을 보면 구부러지는 길인데 보이지 않으니 그저 따라서 핸들을 꺾어야 했다. 이렇게 30여 분 이상을 내려와서 큰 길에 도착하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차가 왔다면 위험한 상황이었겠지만, 외진 연수원으로 올라오는 차는 한 대도 만나지 못했다. 이때도 ‘와! 내가 좋아하는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것도 안보이는 날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하지만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안개가 자욱해서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직 목소리로만 전달할 수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기다리던 날씨라서 좋아할까 아니면 불안하고 무서워서 얼른 벗어나고 싶을까?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20260116. 1,441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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