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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서랍을 가진 사람

마케팅, 여행 그리고 이것저것의 기록

by 팀포라

1. 첫 번째 서랍: 논리와 숫자의 세계

브런치의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제 이름 앞에는 '마케팅 작가'라는 명확한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논리와 효율의 세계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제 글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명확한 목표를 향했습니다. 시장을 분석하고, 트렌드를 예측하며,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드는 전략적인 언어들을 구사했죠.

제 글의 독자는 분명했고, 목적은 설득이었습니다. 숫자로 증명되는 성과와 명쾌한 논리의 세계는 저에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전문가'라는 이름표는 낯설지만 달콤했고, 저는 그 이름표에 걸맞은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늘 다음 분기의 전략과 경쟁사의 움직임, 그리고 더 효과적인 메시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단한 논리의 성벽 안에서 저는 조금씩 시들어갔습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쓰고 싶다는, 정체 모를 갈증이 피어올랐습니다. 효율로 환산할 수 없는 생각들, 데이터로 증명할 수 없는 감정들, 마케팅이라는 틀 안에 담기에는 너무 사적이거나 혹은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제 안에서 자꾸만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정돈된 책상 위에 불쑥 끼어든 먼지처럼, 처음엔 성가시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애써 그것들을 무시하며 첫 번째 서랍을 더 단단히 닫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 글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듯했습니다. 결국, 저는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브런치의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마케팅 작가'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떼어내는 그 순간, 시원함과 동시에 거대한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2. 틈새의 시간: '이것저것'의 방황

이름표를 떼어낸 삶은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것저것'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날은 종일 낯선 동네를 걷고, 어떤 날은 몇 년간 들춰보지 않던 오래된 앨범을 꺼내보았습니다.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생전 관심 없던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들은 제 경력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고, '작가'라는 정체성에도 흠집을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그때 가장 많은 것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마케팅이라는 렌즈를 빼고 바라본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로웠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 해 질 녘 하늘의 미묘한 색 변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웃음 같은 것들.

저는 그저 '이것저것'을 하며 떠돌았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제 안에는 다시 이야기들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은 예전처럼 날카롭거나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물처럼 스며들고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형태 없는 감상과 느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무엇'을 쓰는지가 아니라, 그저 '쓰고' 싶었다는 것을.


3. 두 번째 서랍: 낯선 풍경 속의 나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을 때, 저는 '여행 작가'라는 새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마케팅 작가 시절의 저와는 완전히 다른 색깔이었습니다. 낯선 공기, 이국적인 풍경,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 글의 새로운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서랍이 '이성'의 영역이었다면, 두 번째 서랍은 '감성'의 영역이었습니다. 저는 낯선 곳에서의 해방감과 그 안에서 발견한 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기록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제 글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독자들은 제 글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여행의 설렘을 공유했습니다. 저 역시 그 반응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참 간사한 존재인가 봅니다. '여행'이라는 주제는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저는 또 다른 틀에 갇혀 있음을 느꼈습니다. '여행 작가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생겨났습니다. 항상 새로운 곳을 갈망해야 하고, 늘 감동적인 깨달음을 얻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이 아닌, 저의 '일상' 속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사 온 찻잔에 커피를 마시는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사계절의 변화, 여행 가방을 풀 때의 그 미묘한 아쉬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저는 여행과 일상의 경계에서, 혹은 그 두 가지가 교묘하게 얽힌 순간들에 대해 쓰고 싶어 졌습니다. '여행 작가'라는 이름표는 또다시 저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엔 비좁게 느껴졌습니다.


4. 모든 서랍을 열다: '이것저것'이라는 이름의 우주

그래서 저는 지금, 세 번째 이름표를 달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무 이름표도 달고 있지 않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저는 브런치에 그저 '이것저것'을 씁니다.

어제는 새로 읽은 책의 인상 깊은 구절에 대해, 오늘은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서툰 고백에 대해 썼습니다. 내일은 아마도 길을 걷다 마주친 고양이의 무심한 눈빛에 대해 쓸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많고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저의 가장 큰 결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산만한 사람이라고 자책했습니다. 마케팅 작가일 때는 감성적인 생각을 억누르려 했고, 여행 작가일 때는 일상적인 고민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제 안에 그만큼 많은 서랍이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것은, 그 서랍들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와 가능성이 숨 쉬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마케팅 작가도 저였고, 여행 작가도 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서랍을 활짝 열어두고 무엇이 튀어나올지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채 글을 쓰는 '이것저것'의 작가 역시, 가장 솔직한 저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진정한 글쓰기는, 자신에게 붙은 수많은 이름표를 하나씩 떼어내고, 그 안에 숨겨진 가장 본질적인 '나'를 마주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저의 '이것저것'이 누군가에게는 혼란스럽게 보일지라도, 저는 기꺼이 이 다채로운 혼란 속을 거닐려 합니다. 그것이 저의 우주를 확장하는 방식이니까요. 저의 브런치는 이제, 그 모든 서랍이 자유롭게 열리고 닫히는, 저만의 작은 우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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