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을 그만두기로 했다

관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 나를 잃었다.

by 팀포라

1. 2,000명의 타인, 0명의 내 편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 속에 내 인간관계의 성적표가 들어있다. 연락처 목록에 저장된 이름, SNS의 팔로워 숫자, 카카오톡 친구 목록.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려야 끝이 보이는 그 수많은 이름들 앞에서 나는 문득 고립감을 느낀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데, 정작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밤에 "나 지금 너무 힘들어"라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이내 접어버린다. 다섯 손가락도 채우기 힘든 현실이 초라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감정이 허무해서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리도 애를 썼던 걸까. 어색한 침묵이 싫어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고, 거절하면 나를 나쁘게 볼까 봐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었다. 내 취향이 아닌데도 "좋아요"를 눌렀고, 주말의 휴식을 반납하며 원치 않는 모임에 나갔다.

그렇게 얻은 것은 무엇인가. '성격 좋은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거절할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라는 평판. 그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나는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 바로 '나 자신'을 홀대하고 있었다. 타인의 기분을 살피느라 내 마음이 멍들고 곪아가는 줄도 모른 채, 나는 나에게 너무도 가혹한 주인이었다.


2. 착한 사람 콤플렉스, 그 달콤한 독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이좋게 지내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 가르침은 어느새 강박이 되어 내 무의식에 뿌리내렸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색깔을 지우고, 무색무취의 물이 되어 어떤 그릇에도 담길 수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누구에게도 특별한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는 뜻임을. 나의 친절이 의무가 되는 순간, 상대방은 그것을 권리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너는 착하니까 이해해 줄 거지?" 이 말은 칭찬이 아니라 폭력이다. 나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쓰기 편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나는 관계의 양을 늘리는 데 집착하느라, 관계의 질이 썩어가는 것을 방치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3. 미움받을 용기, 혹은 나를 사랑할 용기

세상에는 '2:7:1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싫어할 사람이 1명, 나에게 별 관심 없는 사람이 7명,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응원해 줄 사람이 2명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나를 싫어하는 그 1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혹은 무관심한 7명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 에너지의 전부를 쏟아붓고 있었다. 정작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2명은 "너는 늘 바쁘잖아"라며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계산법인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내가 잘못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나만의 소신과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요리는 세상에 없다. 슴슴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운 요리는 고역이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건강식은 맛이 없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맛없는 요리'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싫어할 자유를 그들에게 허락하노라. 대신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깊고 진한 맛을 내는 사람이 되겠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다.


4. 관계의 칼로리를 계산하다

몸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듯, 마음의 건강을 위해 관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내 마음에 지방처럼 들러붙어 피로감만 주는 관계, 독소처럼 퍼져 자존감을 갉아먹는 관계를 덜어내야 한다.

나는 '관계 다이어트'를 선언한다. 기준은 단순하다. '이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내 발걸음은 가벼운가?'

만약 만나고 나서 기이하게 피곤하거나, 묘한 불쾌감이 들거나, 자꾸만 내 처지를 비관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과감히 정리 대상이다. 그것이 오랜 친구라 해도, 사회적인 인맥이라 해도 상관없다. 내 영혼을 파괴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관계는 세상에 없다.

물론 두렵다. 연락을 끊으면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지 않을까, 모임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결국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금단 증상처럼 찾아오는 이 불안을 견뎌야 한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 잡동사니로 가득 찬 방에는 귀한 손님을 모실 수 없듯이, 불필요한 인연들로 꽉 찬 내 삶에는 진정한 인연이 들어올 틈이 없다.


5. 좁아진 관계, 깊어진 삶

관계의 가지치기를 시작하고 나서, 역설적으로 내 숲은 더 울창해졌다. 수많은 단톡방의 알림을 끄고, 의무적인 약속들을 취소했다. 주말에는 남들의 비위를 맞추는 대신 혼자 서점에 가거나, 정말 보고 싶었던 친구 한 명과 긴 저녁을 먹는다.

인맥은 좁아졌지만, 관계의 밀도는 높아졌다.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은 내가 화려할 때 박수쳐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초라해졌을 때 조용히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이다. 그 단단한 '진짜'들이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낭비했던 에너지가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타인의 배경이 아닌, 내 삶의 주인공으로 서 있다.


6. 적당히 까칠하게, 더없이 다정하게

그러니 당신도,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 자신에게 미안한 사람이 되지 말자. 싫은 건 싫다고 말해도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질 관계라면 애초에 붙잡고 있을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조금은 까칠해져도 괜찮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가시는 나의 존엄이다. 겉은 단단한 가시로 두르되, 그 안의 속살은 내 사람들을 위해 따뜻하고 부드럽게 남겨두자.

인생은 짧다. 싫은 사람과 억지 미소를 지으며 밥을 먹기엔, 내 시간도 내 감정도 너무나 소중하다. 나는 오늘부터, 나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잃더라도, 나는 나를 잃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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