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내수공업, 겨울 도캠

by B급 사피엔스

호젓한 시골마을 회관. 마당에서 유리창 너머로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보인다. 가래떡을 썰고, 전을 부치고, 재료를 다듬고, 옹기종기 둘러 모여 마을 잔치 음식에 분주하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얼굴엔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른다. 동네 꼬마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깔깔깔 웃고 떠들다,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하며, 콩고물이나 조금 떨어질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2각산을 찾아 첫눈에 들어온 모습이다. 어린 시절 시골 마을의 잔치 준비 모습처럼 보였다. 겨울방학 도서관 캠프를 준비하는 도서관 마법사(학부모) 들의 모습이다. 왠지 모르게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


재미난학교의 2각산은 방문은 처음이다. 그리고 첫 광경이 가내수공업으로 분주한 마법사(?) 들이다. 마법사라고 하면 둘리처럼 ‘호잇~! 호잇~!’ 마법을 부릴 만도 하건만, 저마다 커다란 마분지 박스를 가위로 오리고, 칼로 자르고, 테이프로 붙이고,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바닥엔 잘린 종이 조각들이 수북이 쌓였다. 여름, 도서관 캠프 미션 도우미와 야간 캠프 사감 노릇을 했으나, 겨울엔 캠프 자체를 참여할 수 없게 됐다.


그러한 연유로 이번엔 캠프 준비팀에 한쪽 발을 담가 보기로 했다. 마분지는 캠프에서 빠질 수 없는 산소이자 소금과 같은 존재인가 보다. 여름에 이어 겨울에도 마분지가 차지하는 지분은 대주주에 가깝다. 이것저것 캠프에 사용될 소품들을 마분지를 십분 활용해 마법사들이 뚝딱뚝딱 만든다. 친환경 재활용 소품 전용 소재 마분지. 이런 점에서는 도서관 마법사들이 마법사 같기도 하다. 도안이 없어도 머릿속에서 있는 그림으로 쓱쓱~ 잘도 만든다.


배울만하다. 평소 무엇을 하든 ‘어렵게 생각’하는 편이라던 지인의 말이 맞는 말 같다. 나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플레이어들이다. 오늘 이곳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비로소 어렵게 생각하는 편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인정. 이제 좀 편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기 최면을 걸어보기로.


무리 중에 끼어들어 뭔가를 하기로 맘먹었다. 나는 무엇을 거들면 될 것인가? 얼렁 나에게 일거리를 던져 주길. 마분지 박스 가위질이 주어졌다. 좋다! 이 정도야 가위에 힘만 ‘빡’ 주면 된다. 다음은 역시 조금 고오급 마분지(?)를 활용한 ‘고글’ 만들기. 이번 건 좀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고글의 눈알에 해당되는 부분을 칼로 도려내야 된다. 나름 섬세하게. 마분지라 좀 두께도 있고, 곡선을 살리는게 포인트.


이런 가내수공업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하나씩 만들다 보면 나름 몰입도 되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 마지막 작업으로는 흰색 도화지에 글자를 크고 예쁘게 쓰는 건데, 이게 제일 어려웠다. '중학교 때 미술부 했던 게 맞나?' 싶다. 영 그림과 글자에 소질 꽝. 문장을 보고 몸으로 흉내 내서 상대방이 맞추는 게임인데, 문장이 꽤 길다. 옆에 한 초등 고학년이 2개를 정말 예쁘게 완성할 동안 나는 1개도 완성하지 못했다. 아기자기함과는 좀 거리가.


밤 10시를 벌써 훌쩍 넘겼다. 이렇게 도서관 마법사들이 만든 소품들로 1박 2일 도서관 캠프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번 겨울 캠프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준비하는 일을 돕다 보니 이것 나름대로 즐겁고 재밌는 경험이다. 올여름은 준비부터 캠프까지 전 과정에 한번 발을 담가 볼까 생각도. 계속 소품을 만들다 보면 똥 손이 금 손 될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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