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급식, 블록 큐레이터

by B급 사피엔스

"오사카성은 몇 개의 블록이 사용되었나요?"

"… (생각 중) 4만 개 블록이 사용됐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잠깐 생각하더니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언제 그런 것까지 계산했지?’ 새삼 놀랐다. 태연한 것인지, 의연한 것인지. 아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종종 의외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지난여름, 자원순환 프로그램에 함께 참가했을 때도 그랬다. 바다에서 수거된 오랫동안 자연 마모된 유리조각과 색연필로 그림을 참 개발새발처럼 그렸었다. 중학교 1학년이 그린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각자의 그림 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는 그 엉성한 그림을 가지고 정말 뜻밖에 설명을 했다. 약간 허를 찔린 느낌. 내 눈이 동그래졌다. 헷갈렸다. 이게 순간의 말빨로 지어낸 것인지, 정말로 의도한 것인지. 뭐가 됐던 나는 놀라웠다.


"블록 4만 개는 어떻게 계산했어?"

다음날 물었다. 아이는 오사카성의 가로, 세로 길이를 디폼블록 크기인 8mm로 나누고, 층수를 곱해보니 어림잡아 4만 개 정도가 나왔다고 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걸 계산해서 답을 했다고? 대단하다!' 그리고 며칠 후 생활교사에게 승급식 후기를 들었는데, 사용된 블록 수는 예상 질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리 계산을 했다고 들었다. 즉석에서 계산하고 답했다고 내가 넘겨짚은 것이다. 또 4만 개가 아니고, 3~4만 개로 답했다고 들었다. 기억의 오류 덩어리다(-_-). '팔불출인가? 왜 있는 그대로 듣지를 못 했지?' 잠깐 이런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승급식날 아이의 당차 보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재미난학교 중등 승급식. 1년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그간 준비했던 개인 프로젝트와 중등 학생 전제가 함께한 팀 프로젝트 발표회 날. 생각보다 많은 재미난학교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참석해 응원과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나도 아이도 처음 겪는 승급식이다. 차례차례 학생들이 발표를 하고, 우리 아이가 나왔다. 목소리와 행동은 떨지 않았지만, 얼굴에서 긴장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는 직경 8mm 크기의 디폼블록으로 세계의 유명 랜드마크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오페라하우스, 오사카성을 만들었다. 개인 프로젝트에 대해 PPT로 발표하고, 직접 만든 결과물을 승급식 장소에 전시도 했다.


승급식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무렵 온 가족이 디폼블록에 매달리게 됐다. 아이의 개인 프로젝트를 도와주며, 여름에 있었던 아이들의 행위주체성을 주제로 한 포럼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한마디 잔소리를 할까 말까 그렇게 갈등했었던 내 모습은 방향을 명확히 정했다. 와이프는 나에게 혀를 찼다. 단순 반복적인 행위라 해도 끈기와 노력으로 자기 스스로 이뤄내는 것도 공부라며. 맞는 말이다. 다만 나는 현실과 합리적 타협점을 찾았다. 아이의 건강도 중요하므로(아이는 목, 어깨가 좋지 않은 편이고, 디폼블록을 쌓는 일은 생각보다 관절에 무리를 준다). 설계와 구상, 디자인은 아이가 지휘했고, 나는 몸종 노릇을 했다. 결국엔 와이프도 디폼블록 끼우기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물론 아이가 입으로만 만든 건 아니다). 개인 프로젝트 발표를 며칠 남기고 무게 11kg, 사용된 블록 수 약 4만 개, 디폼블록으로 만든 거대한 오사카성이 완성됐다.


발표 쉬는 시간에 디폼블록이 전시된 곳으로 관람 온 학생, 학부모들에게 아이는 미리 준비한 자료를 활용해 큐레이터처럼 설명했다. 실제 건물의 높이, 무게, 건설기간 같은 건물에 대한 이야기와 디폼블록으로 만든 전시물의 비율, 만든 시간, 높이 등을 설명하고, 관람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준비한 크로마키 천 앞에서 사진도 찍어주었다. 디폼블록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합성해, 기념사진을 선물할 계획이란다. 여름휴가로 오사카성을 갔을 때 즉석 기념사진 촬영을 보며 엄마랑 생각했단다(나도 같이 갔었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이는 개인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 사람들이 박수도 많이 쳐주고 멋있다고 칭찬하니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고 했다. 내년에는 무엇으로 프로젝트를 할 건지 묻는 말에 아직 생각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내년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정하지 않겠지. 1학년 첫 개인 프로젝트는 어찌어찌 마무리됐고, 성취감과 함께 개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맛을 봤다면, 내년에는 조금 더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하는 프로젝트를 선택했으면 한다. 비록 그 결과물이 엉망이 되더라도 과감히 도전해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는 모험을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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