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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Jan 20. 2016

아빠, 나 이제 결혼해도 돼?

우리의 이야기는 끝난 듯 끝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다


딸의 이야기  


네팔에서 돌아왔다. 2주간 아빠와 함께 전전하던 네팔의 숙소들이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역시 집이 제일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의 느낌은 항상 똑같다. 얼마나 화려한 경험을 했든, 믿기지 않는 풍광에 푹 빠졌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마주했든,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떠났던 일상이 그대로 남아있고 별다른 이질감 없이 또 다시 나의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네팔여행은 특별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익숙했던 내가 여행 파트너와 함께 둘이서 여행을 떠났다. 게다가 그 여행 파트너는 가깝다고 할 수도, 멀다고 할 수도 없는 아빠. 네팔로 떠나기 전 이번 여행이 걱정되었던 이유는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챙기면 되었던 여행과는 달리 내게 한 가지 더 챙겨야할 중요한 임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와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그렇게 생각했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결국 여행 내내 챙김을 받았던 건 아빠가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할 때 무거운 가방을 들었던 것은 아빠였고, 여행을 계속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아빠였고, 나보다 한 발 앞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도 아빠였다.     


아빠를 챙겨야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며 오만했던 나는 서른을 앞둔 지금까지도 아직 아빠의 딸일 뿐이었다. 떠날 때만해도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된 능력 있고 성숙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아빠에게 증명해보겠다는 포부로 떠났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성공하지 못 한 것 같다. 처음부터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아빠는 평생 나의 어릴 적 모습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아빠의 예쁜 딸일 것이다.   

 

30년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누구보다도 옆에서 아빠를 지켜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열네 살 어머니를 여읜 사춘기의 아빠도, 서른 살 나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던 아빠도, 환갑에 경치 좋은 곳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할 아빠도 만났다.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알고,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아빠도 그저 나보다 조금 먼저 인생을 살고 있는 것뿐이었다. 아빠도 그 시절에는 나처럼 고민하고, 나처럼 연애하고, 나처럼 선택했다.  


아빠도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나도 아빠가 내게 여행 내내 말해준 것처럼 마음이 끌리는 대로 현재를 충실하게 살다보면 행복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를 선택해 결혼했던 아빠가 결국 나를 만나 우리가 지금 한 가족으로 행복한 것처럼 말이다.



아빠의 이야기  


딸과 둘 만의 2주 여행이 어느 새 끝나버렸다. 24시간 동안 딸과 둘이 붙어있는 경험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고, 서로의 생각을 함께 글로 정리하는 뿌듯한 시간이었다. 딸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여행에서는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여러 번 울었다. 이젠 내게도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나이가 된 것이 틀림없다. 


나는 딸과의 시간이 엄청 신이 났지만 딸은 나만큼 좋았던 것은 아닌 것 같아 섭섭하다. 다음에는 둘이 남미여행을 가는 것이 어떠냐는 나의 제안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둘만의 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지 딸과 함께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데 말이다.


언제 누구와 결혼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결혼할 나이의 성인이 된 딸의 모습이 대견하고 감사하다. 재발한 간염 때문에 아내 뱃속의 이 아이가 대학갈 때까지 아버지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 때의 간절함이 아직도 뼛속까지 남아 지금도 느껴진다. 지민이에게 이번 여행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으니 더 이상 뭐라 말하면 사족이요 잔소리일 뿐이다. 나는 지민이가 자신의 본능적 직관을 믿고 여한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지민이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여행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딸에게 아빠의 생각과 가치판단의 기준이 이러하다고 이야기하려니 먼저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정리해야 했다. 딸 앞에서 모르는 것 없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슈퍼맨 아빠처럼 살아왔지만, 정작 결혼해도 되느냐는 딸의 질문 앞에서 처음에는 무어라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 마음을 모르니 어찌 답할 수 있을까? ‘내 마음, 내 생각, 진정 몰라.’ 유행가 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생각이 좀 정리가 된다 하여도 더구나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딸과 함께 했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딸과 함께했던 시간은 나의 인생관을 훨씬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얼마가 있어야 내 노후를 보장하느냐가 아니라 앞으로의 내 여생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안나푸르나의 설산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저린 가슴을 안고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고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할지에 대해 생각해본 소중한 순간이었다. 새로운 꿈을 꾸며 감사한 마음으로 여생을 즐기련다. 오늘이 내 여생의 첫날이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my life.




그동안 저희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빠와 저의 네팔여행 이야기는 이 글이 마지막입니다만, 

언젠가 아빠와 단둘이 또 다른 여행을 하게 된다면 돌아올게요!

아빠는 현재 35일간 남미여행 중에 계십니다.

이번에는 결혼준비가 아닌, 본인의 환갑준비를 하러 떠나셨어요.

아빠가 직접 쓰시는 환갑 준비 이야기는 아빠의 브런치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아빠 윤재건의 브런치 매거진 : http://brunch.co.kr/magazine/mysix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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