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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10. 2020

빈 미술사 박물관 1

식민지 국가 가난한 국민의 삶

빈 미술사 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유한 7,000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유럽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이다.


빈 미술사 박물관의 가장 큰 장점은 식민지 국가에서 가난한 삶을 살았던 국민들의 일상을 노래한 피터 브뤼겔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농가의 혼례>를 만나보자.


어느 시골 마을에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결혼식은 허름한 곡식 창고에서 열리고 있는데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먹고 마시기에 여념이 없다.



작품의 가장 왼쪽에는 빈병에 술을 따르는 사람이 보이고 그 아래로 구운 빵을 먹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또한 작품의 중앙에는 그릇에 담긴 수프를 들것으로 나르는 두 사람이 클로즈 업되어 화면 앞으로 바싹 당겨져 있다.


맞은편의 긴 테이블에 앉은 마을의 농민들은 왁자지껄한 가운데 앉아 있으며  중앙에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가 화관을 쓰고 두 손을 모은채 얌전히 앉아있다. 특별히 주의를 주지 않으면 그녀가 오늘의 주인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고 평범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끝에는 수녀와 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테이블에 차린 음식은 술과 빵 그리고 수프가 전부이다. 백파이프 연주자는 배가 고픈지 나르는 음식을 바라보고 있으며 문 앞에는 먹을 것이 있은 결혼식장으로 들어 오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작품에서 신랑은 좀처럼 찾을 수 없는데 이는 결혼식 저녁까지 신랑이 나타나지 않는 이곳의 전통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랑과 신부를 강조하는 결혼식을 소재로 한 기존의 그림과는 달리 이 작품은 결혼식에 참석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화가는 빨간색을 비롯하여 군데군데 산뜻하고 밝은 색채를 사용하여 가난한 시골마을의 결혼식을 밝고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피터 브뤼겔은 일찍부터 서민의 풍속을 즐겨 그린 사람이었다. <농부 브뤼겔>이라는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농촌 풍경과 농민의 일상을 즐겨 그렸다. 특히 그는 농부로 변장해 결혼식과 같은 그들의 축제에 참여하곤 했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는 가난하고 고단하게 사는 농촌 사람들의 삶이 사실적이며 풍자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당시 브뤼겔이 살았던 플랑드르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로 종교와 경제적 수탈 등 스페인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었다. 브뤼겔은 이 작품에서 식민지 나라에 가난한 농촌의 사람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사실적이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하였던 것은 당시 발명된 유화의 영향이 컸다. 계란을 희석제로 삼던 이전의 프레스코화와는 달리 유화는 세밀하게 인물들과 풍경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수정이 가능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피터 브뤼겔의 또 다른 작품인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이다.



작품에서 브뤼겔 특유의 매우 섬세한 관찰로 수많은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동작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작품 아래 중앙에는 사육제의 대표선수와 사순절의 대표선수가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술통 위에 걸터앉은 배가 나온 사육제의 대표는 돼지 바비큐를 끼운 꼬챙이로 시위하고 있으며 반대편 가톨릭을 상징하는 사순절 대표는 청어 두 마리가 있는 나무 막대기를 들고 대항하고 있다.



비쩍 마른 그의 다른 손에는 고해자를 채찍질하기 위한 회초리가 들려 있고 발아래는 사순절의 음식인 프레첼이 놓여 있으며 그는 벌집 통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의 뒤쪽으로는 사순절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화면 반대편에는 사육제의 시끌벅적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기괴한 가면을 쓴 연극패들이 지나가고 소외되었던  장애인들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의 일주일을 말하며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셨다. 그래서 가독교에서는 이 기간 동안 금식과 절제를 하며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한다. 사육제는 사순절 전의 일주일로 다가오는 절제된 생활을 맞이하기 전에 마음껏 먹고 축제를 즐기는 시간이다.


그림과 같아 실제로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이라는 행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육제 측에 그려진 메마른 나무와 사순절 측에 그려진 연한 잎이 달린 나무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며 사육제부터 사순절까지 열리는 다양한 축제 행사를 화가가 한 화면에 담아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브뤼겔이 일련의 행사를 대립되는 세력의 싸움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두 세력은 서로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의 절반들이다.


브뤼겔의 그림에는 늘 이렇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영웅보다는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그의 믿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브뤼겔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유롭고 즐거운 생활을 하며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세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그가 사는 세상은 식민지 탄압과 신교와 구교의 대립 속에 혼란과 가난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다음 작품인 <바벨탑> 에서 그는 당시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기원전 597년 3월 14일 유대교의 성지 예루살렘은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군대에 의해 무참히 무너졌다.


성지는 폐허가 됐고 수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여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탑을 목격하였다. 당시 바빌로니아의 도시 중앙에는 신을 섬기는 거대한 제단인 <지구라트>가 있었는데 유대인들의 눈에는 그 제단이 마치 하늘로 연결된 통로 같이 보였다.


이후 유대인들의 목격담은 예루살렘에 전해져 훗날 성서 편찬에 영향을 주었는데 성지를 파괴한 바빌론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야만인으로, 바벨탑은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과 탐욕의 상징으로 성서에 기록되었다.


이때부터 바벨탑은 무지한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기독교 회화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바벨탑의 형상은 당시 이를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그려졌는데 의견이 분분할 뿐 정확한 형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오직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림을 보면 한가운데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바벨탑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 뒤로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바빌론의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왼쪽 하단에는 당시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수행원들을 이끌고 공사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원추형의 바벨탑은 로마의 콜로세움과 닮았다. 이것은 중세 이후 천년의 영화를 누리다가 무너진 로마 모습 속에서 이교도 국가인 바빌론의 모습을 찾으려는 기독교인들의 소망을 보여준다. 당시 유대인들은 끝없이 높은 탑을 쌓아 올리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바빌로니아 인의 욕망과 로마인들의 욕망이 똑같다고 생각했다.


이는 오늘날 끝없이 높은 빌딩을 지으며 물질적 부를 자랑하는 현대인에게도 경고의 매시지를 보내고 있다.


작품에서 바벨탑 공사는 완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애초에 탑은 수직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아래층을 완성하기도 전에 위층을 쌓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결국 공사는 실패할 것이고 바벨탑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점을 화가는 강조하고 있다.


당시 플랑드르 지역은 대외적으로는 자국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던 스페인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신교와 구교가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극도의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화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 당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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